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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모음>│김경록, 오지현, 전수빈 감독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3. 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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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모음> 씨네토크

2023.12.30.

 

초청 : 김경록, 오지현, 전수빈 감독

진행 :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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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현 : 안녕하세요. 신영극장 연말 마지막 행사인 인디플레저 단편 모음 찾아와 주신 관객분들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진명현입니다. 오늘 감독님들도 영화 같이 보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무대 앞으로 나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경록 : 안녕하세요. <9월 모의고사> 연출한 김경록입니다.

 

오지현 : 안녕하세요. <뜨끈한 뜨개질> 연출한 오지현입니다.


전수빈 : 저는 <지구 종말 vs. 사랑>을 연출한 전수빈이라고 합니다.

 

진명현 : 신영극장 송은지 프로그래머께서 연말에 이렇게 말랑말랑한 사랑 영화 단편들을 모아서 관객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다고 해서,  4편의 작품들을 선정해서 상영을 했고요. <마이크로웨이브 러브> 권찬영 감독님께서는 부득이하게 참석을 못하셔서 세 분 감독님과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스크린 통해서 오늘 상영작 보니까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지금 막 관람이 끝난 상태인데 상영작들 어떻게 보셨는지 소감부터 여쭤보겠습니다.

 

김경록 : 저는 일단은 오늘 제 영화가 상영된 게 너무 기뻤어요. 오늘 일어났을 때부터 너무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강릉에 오게 됐어요. 영화 보는데 손에 땀이 나고 오랜만에 그런 경험을 해서 되게 즐거웠습니다.

 

진명현 : 본인 작품 다시 보니까 어떠세요? 스크린으로.

김경록 : 솔직히 말해서 너무 부끄럽고요. 한편으로는 저 혼자 맨날 보다가 모르는 분들하고 같이 보니까 이상하고 낯선 기분이 되게 좋더라고요.

 

진명현 : 아마 또 이렇게 연말에 극장에서 보는 기분은 남다르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현 감독님은 어떠셨습니까?


오지현 : 저도 엄청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됐는데 촬영할 때는 되게 더운 여름이었거든요. 그때 생각이 다시 나면서 조금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이 보여서 살짝 부끄럽기도 하고 근데 다시 보게 돼서 여러모로 좋았습니다.

 

전수빈 : 저도 마찬가지로 다시 볼 때마다 항상 잘못했던 부분들, 저만 알고 있는 영화 속의 단점들이 보이니까 항상 그런 걸 들키지 않을까? 염려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게 됐어요. 또 오랜만에 같이 관객분들하고 볼 수 있어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봤습니다.

 

진명현 : 작품들을 보고 난 뒤에 마음을 좋게 해 준다고 해야 되나요? 불편한 구석이 없게 만들어주는 작품들이어서 아마 여러분들 중에 내년 계획 중에 목표를 사랑이라고 쓰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이런 상영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상영 순서대로 <지구 종말 vs. 사랑> 얘기를 먼저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도 정말 귀엽죠? 저도 집에서 보고 극장에서 재관람을 했는데 확실히 스크린으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오늘 볼 때는 마지막 장면에 음악과 화면의 싱크로율이 정말 잘 맞아서 이 연인의 산뜻한 출발을 보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제목은 약간 무섭지만 그래도 아주 귀여운 이야기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감독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전수빈 : 원래는 <지구 종말 vs. 사랑>은 아니었고,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기후위기나 환경 파괴로 인한 종말 이야기를 꼭 해야만 된다, 그런 시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몰두하고 있었는데 너무 잘 안 풀린 거예요. 그래서 한동안 놓고 있었어요. 그쯤에 오래 만나던 분이랑 이별도 하고,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가 또 포기하기도 했어요. 그런 사랑에 관한 여러 가지 감정적인 부침을 겪다 보니까 어쩌면 나에게 사랑이라는 게,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나에게 종말만큼이나 중요한 화두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종말을 가장 중요시하는 윤진이라는 캐릭터와 사랑을 중요시하는 혜경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어요. 그 두 사람이 부딪히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지구 종말 vs. 사랑>을 쓰게 됐습니다.

진명현 : 여러분들도 아마 공감하시겠지만 대사가 정말 좋아요. 여러 번 만지신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대사들이었고, 특히 혜경이가 혼자 쓴 글을 발표할 때의 그 흐름도 너무 매끄러워가지고 시나리오 작업에 공을 많이 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했거든요. 얼마나 오래 시나리오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수빈 : 시나리오는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초고까지 3주 정도 걸렸거든요. 시나리오 말씀해 주셔서 하고 싶은 얘기가 저는 단편 영화를 쓰더라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작법서에 나오는 3장 구조 있잖아요 그런 영화적 문법에 철저하게 입각해서 써야만 시나리오를 쓸 수 있더라고요. 제 능력이 그 정도 한계라서 그런 것도 있고.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카페에서 구성된 대화나 설정들이 후반부에 매듭지어져서 관객들이 보기에 매끄럽게 느껴질 수 있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진명현 : 그러면 몇 고까지 쓰신 다음에 촬영에 들어가신 거예요?

 

전수빈 : 사실 초고에서 그렇게 크게 수정을 하지 않았어요. 영지와 수강생이 발표하는 두 편의 시가 있는데 초고에는 그 부분만 채우지 못한 상태였어요. 후반부에 그 부분만 추가가 됐고, 촬영본이랑 초고가 거의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진명현 : 다음 작품도 너무 기대가 되고 궁금합니다. 지금 혹시 쓰시는 게 있으세요?

전수빈 : 제가 지금까지 단편 작업만 했는데, 이제는 장편을 도전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의력 집중과 시간에 대한 소재로 이야기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진명현 : 주의력 집중과 시간에 관한 이야기라면 도둑 맞은 집중력같은 그런 이야기인가요?

전수빈 : , 맞아요. 그런 요소를 제 방식대로 재미있게 풀어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진명현 : 감독님의 첫 장편을 손꼽아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9월 모의고사>. 이 영화가 어떤 영화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셔서 뽀뽀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얘기를 했는데, 사실 뽀뽀를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로 영화가 막을 내리긴 했어요. (웃음) 영화를 다시 보니까 감독님이 섬세하게 두 배우님들의 분초를 조율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 작품 중에 러닝 타임이 가장 짧지만 감독의 정교한 디렉팅이 필요한 영화이기도 했을 것 같거든요. 현장에서 숨소리까지도 컨트롤하셔야 됐을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김경록 : 제 기억에서 많이 가져온 것 같기는 해요. 그때 제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있었던 공기나 머리카락이랑 어깨가 서로 닿을 때 그런 것들이 유난히 더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배우분들한테는 머리카락 닿는 거라든가 몸 닿는 것에 대해 특히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깨가 그냥 닿는 게 아니라 더 몸을 틀어서 닿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요. 촬영 조명을 친구들끼리 했는데 머리카락만 더 잘 보이게 집중하면서 연출했었던 것 같아요.

 

진명현 : 사실 세 편 다 등장인물들의 후일담이 좀 궁금해지는 작품들이긴 한데 특히 <9월 모의고사>가 가장 궁금해요. 재수생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9월 모의고사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게 되게 궁금해지기도 했었거든요. 혹시 감독님 뒷이야기를 생각해 놓으셨거나 써놓으셨던 것들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경록 : 후에 두 명이 어떻게 됐을지에 대해서는 열어두고 싶었고요. 근데 아마 성적은 잘 안 나왔을 거예요. 전날 뽀뽀한 기억 때문에, 그런 일이 특히 기억 속에 잔상으로 오래 남잖아요. 모의고사를 보는 날, 국어 영역 듣기 평가를 시작할 때부터 어제의 잔상 때문에 시험을 못 봤을 것 같아요.

 

진명현 : 계속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니까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데요. (웃음) 혹시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인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경록 : 재수는 안 했는데 설렘은 그냥 자연스러운 얘기인 것 같아요. 헷갈리는 마음을 많이 그리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는 떨림이 상대방 때문인 건지 아니면 시험 때문인 건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이 생기고, 커피만 마셔도 심장이 빨리 뛰지만 상대방 앞이라서 떨리는 건가 싶기도 하잖아요. 이런 모든 감각들이 특히 십 대 때 많이 혼동이 됐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 것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진명현 : 왓챠피디아를 보니까 어떤 분께서 <뜨끈한 뜨개질>을 영화제에서 보시고 평을 남기신 게 있더라고요. 아마 지현 감독님도 보셨을 것 같긴 한데, 왕가위와 박찬욱의 후예라는 식으로 평을 남기셨더라고요. 그만큼 미술적인 부분들이나 촬영적인 부분들이 굉장히 공들여서 테크니컬 하게 완성된 게 돋보이는 영화인 것 같아요. 아마 많은 여성 관객분들은 특히  영화의 의상에 대해서 궁금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은 제작비도 좀 궁금해지더라고요. 로케이션이나 세트도 그렇고요.


오지현 : 제가 한 2년 전부터 뜨개질을 본격적인 취미로 시작을 하게 되면서 뜨개질 한 걸 누군가한테 대가 없이 선물하는 게 진짜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뜨개질과 사랑을 접목시켜서 시나리오로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출연하신 분들은 배우는 아니고 원래 모델분들이에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쓰고 캐스팅할 단계에서 두 분들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이미지를 잘 담아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캐스팅을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배우분들이 착용할 의상도 각자의 개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미술감독님이랑 리스트업도 많이 하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특히 첫 장면에서 억두가 입고 있는 점프슈트 같은 경우는 영화 속에 뜨개질 국가대표라는 가상의 설정을 넣어서 만든 인물이다 보니까 그 인물이 입고 있는 점프슈트에 태극기 패치도 달고 유니폼 같은 스타일로 제작해서 입히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진명현 : 오늘 보신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과 캐릭터들 모두가 아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 그중에서 한 명만 골라서 사귀라고 하면 저는 당연코 억두랑 사귀어야 되지 않을까, 억두만 한 남자를 최근에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저렇게 공들여서 뜨개질로 심장까지 만들어주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감독님 머릿속에 있던 이 러블리한 캐릭터를 어떻게 영상으로 끄집어내셨는지도 궁금해요.

 

오지현 : 억두가 특히 심장을 직접 떠주는 것에 대한 설정은 오늘 관객석에 있는데 김세인이라는 미술 감독 친구가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줬어요. 저 혼자만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기보다는 미술 감독이 이미지적으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더해주고 디테일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하면서도 재밌다고 느끼는 것들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진명현 : 영화랑은 무관한 이야기이지만 영화 끝나고 플리마켓 같은 걸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단편 모음을 사랑 영화 특집이라고 저희가 호명하는데 세 분 다 크게 불만은 없으시죠? 사실 이렇게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단편들을 보면 감독님들이 어떤 선배 감독님들이나 창작들로부터 영향을 받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렇게 몽글몽글한 감정을 본인들에게 남겨줬던 사랑 영화의 대가들이 있다면 누군지 여쭤보고 싶어요. 먼저 지현 감독님부터 왕가위와 박찬욱의 후예라고 생각하시는지부터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지현 : 저한테 너무 과분한 코멘트였고요. 놀림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웃음) 근데 그 코멘트 보면서 조금 놀라긴 했던 건 실제로 왕가위 감독님과 박찬욱 감독님을 너무 좋아하기도 했거든요. 저에게 인상을 깊게 남겼던 사랑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럽게 왕가위 감독님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진명현 : 그럼 감독님이 제일 좋아하는 왕가위 감독님의 작품이 어떤 작품이에요?

 

오지현 : 왕가위 감독님 영화 중에는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거는 그래도 <해피 투게더>가 많이 생각이 나네요.

 

진명현 : 경록 감독님은 어떠십니까?

김경록 : 저는 <500일의 썸머>도 크게 와닿은 영화지만, 최근에는 스틸샷까지 저장해서 마음에 담아두는 영화는 <헤어질 결심>이었어요.

 

진명현 : 그러니까 그 말씀은 나도 박찬욱의 후예다, 누군가 왓챠피디아에 내 영화를 보고 박찬욱의 후예다라고 써달라는 걸까요? (웃음)

 

김경록 : 아이고. (웃음)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명현 : 알겠습니다. 전수빈 감독님은 누구를 꼽으실 수 있을까요?

전수빈 : 저는 한 작품만 꼽으려면 토니 스콧 감독의 <트루 로맨스>라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진명현 : 혹시 그 영화를 한 작품으로 꼽으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전수빈 : 그냥 단순하게 제가 제일 애정하는 작품 중 하나거든요. 특별히 사랑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진명현 : 내일 하루 종일 영화를 안 보신다면 올해 마지막 영화가 오늘 본 4편의 단편이 되는 거라서 여기 계신 세 분의 감독님들께 앞에 계신 관객분들은 정말 각별하거든요. 감독님들은 내일 23년의 마지막 날에 단 한 편의 영화를 본다면 어떤 영화를 보시겠습니까?

 

전수빈 : 저는 말 나온 김에 <트루 로맨스>를 보겠습니다.

 

오지현 : 저는 <치통보다 낯선>이라는 제목의 단편영화를 마치고 후반 작업 중에 있는데, 제목을 <천국보다 낯선>이라는 영화에서 가져와서 만들었어요. 한 겨울이기도 하니까 내일 한 번 더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김경록 : 저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임신하는 이야기 쓰고 있어요.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 때 <안 할 이유 없는 임신>을 너무 감명 깊게 봐서, 실사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았거든요. 감독님께 소재만 가져오고 싶다 말씀드리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요. 최근에 레퍼런스로 봤던 영화 중에 <투씨>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남자 배우가 얼떨결에 여장을 해서 여자 배역으로 오디션을 봤다가 덜컥 합격해서 연속극에 나오게 되고 유명 스타가 되는 이야기인데요. 1980년대 여성의 삶이 많이 힘들었구나를 느꼈고, 마지막 날에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진명현 : 세 감독님 모두 차기작을 들고 이 자리에 와주셨네요. 그 작품들도 언젠가 좋은 기회에 신영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좋을 것 같고, 또 이렇게 1230일 날 3편의 영화를 같이 튼 건 어마어마한 인연이니까 앞으로 영화 작업 필드에서 좋은 영향들을 서로 끼치면서 지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영화 3편에 대한 관객분들의 관람 후기 감상 아니면 작품에 대한 질문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관객 1 : 얼굴 뵀을 때 어떤 작품을 만드셨는지 알 것 같았어요. 그냥 그 느낌이 그대로 영화에 묻어나더라고요. 정말 재밌게 잘 봤습니다.

 

진명현 : 보자마자 누가 만들었는지 알 것 같다는 게 너무 재밌네요. 용기 내서 말씀해 주신 관객분 너무 감사합니다. 또 다른 관객분 계실까요? 객석에 계시는 김세인 미술 감독님은 다른 두 편 어떻게 보셨는지 너무 궁금해요.

 

관객 2 : <지구 종말 vs. 사랑>은 대사를 너무 잘 쓰셔가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봤고요. 작은 장소 안에서도 사랑의 티키타카 같은 대사들이 너무 재밌게 잘 들려서 정말 좋았고요. 저는 우리 지현 감독님 영화가 제일 짧을 줄 알았는데, 러닝타임이 더 짧은 영화가 상영한다고 해서 <9월 모의고사>는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었는데 그 짧은 순간 안에서도 풋풋함이 잘 녹아들어서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진명현 : 김세인 감독님을 대신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웃음) 세 분 다 제목도 여쭤보고 싶은데, 처음부터 제목을 정하고 시작을 하신 건지 아니면 예비 제목들도 있었던 건지 궁금한데요.

 

전수빈 : 제목 후보들이 되게 많이 있었어요. ‘거절하는 마음’, ‘지구 종말 직전의 사람들’, ‘사랑 이야기는 쓰지 않기로 해요구구절절한 제목들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제가 괴수 영화를 되게 좋아해서 고질라 시리즈를 챙겨 봤는데 <고질라 VS. >이라는 제목에서 좀 따와서 어그로도 끌고 그러면 흥행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목을 <지구 종말 vs. 사랑>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진명현 : 이 작품은 대사가 좋은 만큼 배우들의 역할이 되게 중요한 작품이기도 해요. 정의진 배우님과 김현목 배우님의 귀에 곧바로 전달되는 딕션 같은 것들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생각하는데 김현목 배우님은 기존에 보이던 이미지도 있지만, 조금 다른 이미지도 영화 속에 보이더라고요. 특히 낭독하는 장면에서 기존에 못 봤던 얼굴들이 보여서 되게 좋았거든요. 두 분 캐스팅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전수빈 : 윤진 역의 정의진 배우님은 제 전작이었던 <과정의 윤리>에 출연해 주셨고,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윤진 역할은 의진 배우님을 캐스팅해야겠다고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해경은 딱히 특정 배우분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는데, 다 쓰고 나서 처음 딱 떠올린 얼굴이 현목 배우님이었거든요. 근데 현목 배우님이 소속사도 있고 많이 알려지셔서 단편을 더 이상 안 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이다가 시나리오라도 전달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연락드렸는데 시나리오도 마음에 들어 하시고,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하셨어요.


진명현 : 지현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데 사실 단편 소설도 그렇지만, 단편 영화도 엑기스만 뽑아서 보여줘야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러닝 타임이 무한정 길어질 수 없고, 또 하고 싶은 얘기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러닝 타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늘어진다는 느낌을 관객들이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감독님이 영화를 편집할 때 신경 쓴 부분들이 있으실 것 같거든요. 어떤 부분을 제일 주안점에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오지현 : 편집할 때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중간에 몽타주 장면이었어요. 사람들이 안 나오고 음악과 심장 소리가 주로 나오는 장면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기존의 곡을 레퍼런스로 넣어놨어요. 나중에 음악을 전부 다시 만들면서 음악에 맞춰 편집을 하고 수정하면서 몽타주 장면이 루즈해지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편집에 공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진명현 : 아까 배우님들이 원래 모델 활동 하시는 분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캐스팅한 데에도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오지현 : 시나리오를 쓰고 지인 분께 보여드렸는데요. 처음에는 성별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썼던 시나리오였는데 역할에 어울리는 분이 있다고 하시면서 출연한 배우 두 분의 사진을 보여줬어요. 두 분이 실제로 커플이에요. 목소리를 모른 상태로 오로지 이미지만 봤는데 지광이와 억두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무작정 먼저 제안을 드렸어요. 만나 뵙고 캐릭터 리딩할 때도 너무 좋아서 함께 하게 됐습니다.


진명현 : 이름이 되게 특이하잖아요. 지광이와 억두. 무슨 뜻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오지현 : 엄청난 의미가 담긴 이름은 아닌데요. (웃음) 지광이는 제 별명이었어요. 친구 중에 이름을 멋대로 바꾸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저를 지광이라고 불렀고요. 억두는 미술 감독 세인이가 온라인 게임할 때 쓰는 아이디였어요. 지광이랑 억두라는 이름 자체가 성별을 유추하기가 어려운 점도 재밌더라고요.

 

진명현 : <9월 모의고사>는 두 배우님을 어떻게 캐스팅하셨는지 궁금해요. 두 사람 말고는 어떤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잖아요.


김경록 : 캐스팅 당시에 제 심정이 뭔가 좀 그랬어요. 영화를 그만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되게 컸을 때라서 주변에 알고 지내는 배우분들이 많았지만, 계속 부탁해도 되는지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들더라고요. 그래서 조그맣게 영화 만들고 싶은데 혹시 참여해 줄 수 있는 배우분들이 있는지 SNS에 올렸더니 두 배우분이 연락 주셨고. 그래서 캐스팅하게 됐습니다.


진명현 : 묘하게 이 작품 속 배우들이 대만 영화 주인공들 같은 느낌이 좀 있어요. <상견니><나의 소녀시대>를 합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마스크들인데 두 배우분들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김경록 : 남자 배우는 제가 원하는 이미지였고 연기도 너무 잘해준 거예요. 영화 속 살아 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져서 그대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자 배우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캐릭터를 귀엽게 잘 표현해 줘서 너무 좋았습니다.

 

진명현 : 여기 세 작품에 나온 배우들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너무 궁금하고요. 다른 감독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과 합을 맞춰보는 모습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기작 중에서 아마 가장 빠르게 볼 수 있는 작품은 편집까지 마친 지현 감독님 작품일 것 같은데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 살짝만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오지현 : 사랑니와 탐조를 소재로 한 영화예요. 새를 관찰하러 다니는 고등학생 두 친구가 주인공이에요. 같이 조류도감을 만드는데 주인공이 어느 날부터 사랑니가 생기고, 점점 불편해지는 과정 속에서 친구였던 상대방에 대한 낯선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 영화입니다.


진명현 : 너무 재미있을 것 같네요. 촬영은 혹시 어느 지역에서 하셨어요?


오지현 : 촬영은 서울이랑 학교 근처 안산에서도 하고, 화성에서 진행했어요.


진명현 : 알겠습니다. 내년에 아마 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 정수빈 감독님은 어디서 촬영하실 예정이신가요?

 

전수빈 : 아직 거기까지는 구상을 못했어요. 이제 막 글을 쓰고 있는 과정이라서요.

 

진명현 : 알겠습니다. 일단 시나리오 먼저 잘 마무리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경록 감독님도 혹시 현장에 대해 그리고 계시는 그림이 있으신가요?

 

김경록 : 시흥에 있는 산부인과를 빌렸고요. 5층 짜리 건물인데 지금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서 거기서 진행할 것 같습니다.

 

진명현 : 감독님 세 분의 새 작품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자리랑은 조금 무관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시점에서 하면 좋은 질문일 것 같아서요. 수많은 창작 중에 영화감독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만둬야 할까라는 고민도 하셨다고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작업을 말씀하시면 얼굴부터 환해지는 걸로 보아서는 절대 떠날 수 없겠다는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요. 경록 감독님부터 내가 영화감독을 포기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경록 : 저는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는데요. 사실 원래 어릴 때는 그림을 잘 못 그리면서도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근데 사촌 동생이 만화 영재인 거예요. 주변에 그림을 너무 잘 그리는 사람이 있어서 만화가는 일찌감치 포기했어요. 근데 혼자서 상상으로 이야기 만드는 건 많이 했었고, 그런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은 계속 있었어요. 지금은 사라진 영화제인데 그 영화제에서 1등을 하면 100만 원을 준다고 하길래 담임 선생님한테 카메라를 빌리고 사람들을 막 모아서 가족 영화를 찍었어요. 사실 100만 원이 갖고 싶은 게 컸지만 뭔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영화가 경쟁 부문에 선정되고 용산 CGV에서 틀어진다는 소식에 오늘처럼 설렜어요. 영화를 잘 몰랐던 때라서 너무 부끄러워서 같이 간 친구들 손 잡고 땀을 흘리면서 영화도 제대로 못 보고 관객들 반응만 들었는데 그때 너무 기쁘더라고요.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그런 기쁨을 느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생각했어요. 나 영화 좋아하나 보다. 그 뒤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습니다.

 

오지현 : 제가 생각한 영화 만드는 일에 제일 큰 매력은 텍스트가 이미지로 구현되고, 영상으로 만들어지는 거, 그거 자체가 엄청 재미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되게 다양한 장치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에요. 대사나 연기, 음악이나 의상처럼 영화 속 다양한 장치들로 연출 스타일을 만들고 개성 있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어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호흡을 맞춰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 그 자체도 저한테는 에너지를 오히려 주는 느낌이 작품을 할 때마다 들어서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전수빈 : 저도 잊지 못한 순간이 있는데요.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사람들하고 부대끼거나 친하게 지내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워크숍 작품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영화를 만들었을 때 교수님이나 관객분들이 보여주신 순수한 반응 같은 것들이 저한테 너무 충격적으로 좋았거든요. 내가 친한 사람들하고 같이 영화를 만들어서 어떤 반응들을 접하는 게 정말 신세계 같더라고요. 그 기분을 잊지 못해서 계속 영화를 하는 것도 있고요. 또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 산업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하고 좋든 싫든 같이 가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저는  일상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서 작업이 아니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기회가 없는데요. 영화 작업을 한 편, 두 편 하면서 소중한 인연들이 생기고 난관을 같이 극복하면서 제가 사람이 되어 간다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뭐랄까. 사회성이 길러진다고 해야 하나.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더라고요. 그런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선물을 남겨주는 게 영화라는 매체고, 작업이라서 계속해서 영화를 하고 싶어요.

 

진명현 : 세 분 다 내밀한 속 이야기 들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지금 하신 말씀이 아마 본인들한테 하는 이야기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마음들 잘 간직하셔서 오랫동안 작업 이어나가시고 새로운 영화들 많이 만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 인사 말씀 들으면서 오늘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경록 : 항상 해가 지날 때마다 느끼지만, 신년 때 다짐했던 마음과 다르게 우여곡절이 많은 한 해가 되는 것 같아요. 2023년이 지나고 이제 2024년이 돼 가는데 다 좋은 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지현 : 저도 오늘 관객분들도 그렇고 신영극장에 이렇게 초청해 주시고 영화를 상영하게 돼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개인적으로 엄청 뜻깊은 한 해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전수빈 : 여기 신영극장을 영화 보러 제가 한 서너 번 왔던 기억이 나요. 제 영화를 신영에서 상영하게 될 줄을 몰랐는데 초청해 주신 프로그래머님과 관계자 분들께 너무 감사드리고요. 연말을 헛헛하게 보낼 뻔했는데 이렇게 의미 있는 시간 보내게 해 주신 관객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진명현 : 너무 감사드리고요. 끝까지 자리 함께해 주신 관객분들도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2023년이 이제 27시간 남았거든요.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거 다 하시고 후회는 내년에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웃음)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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