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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리뷰 : 약간의 각도만 비틀면 보이게 되는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9. 1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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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약간의 각도만 비틀면 보이게 되는

 

 영화 <딸에 대하여>에는 자신의 시야를 바꿀 수 있는 인간의 힘과 기꺼이 시야를 바꾸어 보려는 인간의 의지를 한 번 더 믿어보려는 기대감이 은근하게 감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필자는 사각지대(死角地帶)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각지대란, 시야각에서 벗어난 곳으로 어느 위치에 섬으로써 보이지 않게 되는 부분을 말한다. 사람의 시야각은 대략 140° 정도인데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전경 중 140°에 포함되는 곳 이외에 나머지 측면과 후방은 시야에 들지 않는다. 시각에 의존하여 세상을 인식하다 보면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시야각 너머의 존재하는 것들을 무신경한 태도로 대하곤 한다. 눈의 감각으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사회에서 관심과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사각지대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관심과 영향에서 벗어난 부류들은 자연스레 소수자와 약자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온갖 차별과 혐오를 받아내야 한다.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세상은 자신들의 시야 범위에 벗어났다는 이유로 세상에 만연하는 갈등과 폭력을 무시(無視)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사각지대는 고정된 구역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바뀌거나 고개만 살짝 돌려도 그동안 시야에 걸리지 않았던 부분들을 볼 수 있게 된다. 한 끗 차이만큼의 각도만 비틀면 되는 단순한 변화임에도, 이러한 시도가 말만큼 쉽지는 않다.

 

 영화는 엄마(오민애)로 지칭하는 한 여인을 통해 우리의 시야를 조금씩 조정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영화상에서 엄마(이하 그녀)의 삶은 생애주기적으로 중간에 자리한다. 중년 여성인 그녀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며 홀로 죽음을 기다리는 노년 여성 제희(허진)를 각별하게 챙기고 있다. 한때는 기아와 가난에 고통받는 온 세상의 아이들을 위해 구제 사업을 펼쳐온 왕성한 활동가였을 제희는 이제 늙고 병 들어갈 뿐이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쓸쓸히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제희를 보며 그녀는 마치 자신의 미래를 마주한 듯 불안해한다. 그녀가 동료와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제희를 유난히 보살피는 까닭은 측은지심과 동병상련이 애처로이 섞인 감정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녀에게는 그녀를 닮은 외동딸이 있다. 대학 강사로 일하는 그녀의 딸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당분간 그녀의 집에 들어와 살기로 하는데, 딸은 그녀의 동성 연인도 함께 데려온다. 서로를 그린(임세미)과 레인(하윤경)으로 지칭하며 애정을 숨기지 않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지금처럼 청춘을 보내다간 번듯한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홀로 늙어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그녀의 불안은 그녀의 딸에게서 출발하여 그녀를 지나 제희에게 다다른다. 그녀의 불안이 관통하는 삶의 궤적에는 이탈에 대한 공포가 진하게 묻어난다. 그녀가 딸이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서 젊음이 창창할 때 좋은 이성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행복하고 건강한 가족을 만들길 바라는 마음은 너무도 일방적이다. 허나, 그녀의 이기적인 소망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건 그녀의 앞에 보이는 제희의 삶이 가혹하리만큼 고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자신과 자신의 딸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근심은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받아들이겠다는 아집을 더욱 공고히 다진다, 그의 일환으로 그녀는 최선을 다해 딸의 연인 레인을 외면한다. 한집에 살게 되었음에도 레인의 활동 시간을 확인하여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되도록 말을 섞지 않는다. 보는 사람들이 민망하리만큼 레인의 제안들(아침에 내린 커피 한 잔, 직접 만든 파스타, 한집살이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 대화 등)을 그녀는 철저하게 거절한다. 레인을 대할 때마다 깊은 한숨이 스며 나오는 듯한 그녀의 얼굴에서 결단코 레인을 그녀의 시야에 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깨질 것 같지 않던 그녀의 아집은 세상의 사각지대에 갇힌 제희를 구조하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녹아내린다. 늙고 병든 제희의 존재를 무정하게 삭제하려는 세상에 그녀는 반기를 들고야 만다. 그녀는 멋대로 제희를 전원시킨 요양원 상사에게 당신 부모라도 그리 했겠느냐며 힐난하고, 제희가 남긴 재산을 맘대로 취한 재단 관계자를 찾아가 기꺼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된다. 그녀의 저항에서 동료 교사의 부당해고에 반기를 들고 학내 투쟁에 앞장서는 그린이 겹쳐 보인다. 피는 못 속인다는 속된 말에 신뢰가 가는 순간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장면에서 그녀는 제희를 제 집에 데려와 간병한다. 그리고 레인이 그녀의 곁에서 제희의 간병을 돕는다. 제희를 돌보는 그녀와 레인의 다정한 시선과 손길이 참으로 닮아있다. 제희가 레인을 두고 그녀의 딸이라고 착각할 만큼 말이다. 여전히 그녀는 레인에게 시선을 건네지 않지만, 레인의 존재를 인정하며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구의 꿈이었는지는 모를 장면, 그녀의 집 거실에서 그녀와 제희, 그린과 레인이 둘러앉아 레인이 손수 만든 빵을 나눠 먹는다. 낭랑한 웃음소리가 가득 채운 집안은 단란하고 화목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꿈속의 장면이 끝나고 제희는 편안한 잠에 빠진 듯 죽음을 맞이한다. 제희의 마지막은 그녀와 그린과 레인이 함께 한다. 무연고자인 제희의 장례식을 찾아오는 외부 손님은 전무하다. 그러나 그 공백을 그녀와 그린과 레인 그리고 세 사람의 동료가 채워준다. 어두운 상주 휴게실에 잠시 눈을 붙이는 그녀 위로 그린과 레인이 친구들과 식장 테이블에 둘러앉아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의 소음이 고독한 삶에 대한 그녀의 염려를 조금은 누그러뜨린 것 같다. 세상이 추천하는 일반적이고 안정된 모범답안과도 같은 인생이 능사는 아님을 비로소 받아들인 모양이다. 잠든 그녀의 표정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고집스러웠던 그녀의 시야가 제희를 보내면서 아주 조금은 변화하지 않았을까.

 

- 관객리뷰단 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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