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바보> 씨네토크
2023.12.29.
초청 : 이종수 감독, 안은수 배우
진행 : 정지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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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영화 평론하는 정지혜입니다. <부모 바보>라는 이 영화는 이종수 감독님 장편 데뷔작인데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 처음으로 관객들을 만났고, 또 얼마 전에 폐막한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서도 소개가 됐습니다. 굉장히 뭐랄까요? 어찌 보면 평범한, 우리 주변에서 많이 봤을 법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꽤나 낯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장면들도 그렇고,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고 의아한 지점들도 있으실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것들을 여쭤보고요. 관객분들도 질문 많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분 다 신영극장은 아마 처음 오셨을 것 같은데요. 반갑습니다. 인사 먼저 부탁드릴게요.
이종수 : 안녕하세요, 저는 <부모 바보> 연출한 이종수라고 합니다. 올해 마지막 상영이 될 것 같고요. 요즘 영화 개봉에 관한 이야기를 PD님하고 조금씩 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독립 영화나 극장 상황에 대해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는 시기였는데, 이렇게 극장 관계자분들이 기획전으로 관객들한테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보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은수 : 안녕하십니까. 영진을 연기한 안은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신영극장에는 처음 왔는데 입구에 커다란 영사기가 있으니까 뭔가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고,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곳곳에 배어 있는 공간인 것 같아서 나는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해봤습니다.
정지혜 : 그전에 단편, 중편 그리고 이번 장편 영화로 처음 관객분들 만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까 영화 속 주인공 영진처럼 현대미술을 전공하시다가 ‘마흔이 되기 전에 영화감독을 해야 되겠다’고 하셨더라고요. 그 포부보다는 조금 더 일찍 영화감독이 되셨습니다. 어떤 경로로 장편을 만들게 되셨나요?
이종수 : 사실 어떤 깊은 목적성을 가지고 성취해 낸 거라기보다는요. 개념이 없었습니다. (웃음) 영화 찍는 데 필요한 것들도 잘 몰랐고. 저희 영화가 예산이 굉장히 작았거든요.
정지혜 : 어느 정도였는지 여쭤봐도 돼요?
이종수 : 촬영에만 들어간 예산을 따지면 700만 원 정도였어요. 사실 저희 PD님도 영화 프로듀서를 처음 해보시고, 저도 장편 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보니까 한 35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예산이 붙고 붙어서 700만 원 정도가 들더라고요. 스태프들이 부단히 노력을 해줬죠. 다들 안 될 것 같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잘 찍어줬고, 여러 도움을 받아서 장편 영화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정지혜 : 영화 <부모 바보>라는 제목부터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식 바보라는 말은 자식만 생각하고 자식에 대한 엄청난 사랑을 갖고 있는 것을 뜻하잖아요. 부모 바보라고 했을 때도 자식 입장에서 부모에게 엄청난 사랑을 갖고 있다는 말인 것 같아요. 또 반대로 생각하면 부모를 향한 원망과 약간의 분노, 울분의 표현인 것 같기도 해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부모나 부모 세대 혹은 자식을 향한 마음이 굉장히 복잡한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 그런 지점에 대해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가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종수 : 딸바보, 아들바보 이런 의미보다는 부모 욕을 하는 것처럼 좀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었어요. 아무래도 저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영향받으며 살다 보니까 부모 욕을 하는 게 가장 큰 모욕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 부모 바보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 부모가 살라고 하는 대로 살아봤더니 내 삶이 잘못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리 부모 바보인 것 같다고 누군가에게 얘기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이 맞다고 너네 부모 바보인 것 같아라고 동의하면 기분이 나쁘잖아요. 아무리 내 부모가 밉다고 하더라도. 그런 여러 의미들을 담아서 부모 바보인 순례를 포함해서 부모에게 어떻게 보면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도 있는 자식들도 영화에 나오는 것 같고 그런 생각들로 <부모 바보>라는 영화를 만든 것 같아요.
정지혜 : 은수 배우님께서는 인터뷰를 읽어보니까 연기를 관두겠다는 마음 상태일 때 캐스팅 연락을 받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떠셨어요? 다시 해보니 괜찮은 선택이었다, 내지는 다시 시작하길 잘했다, 괜찮으셨나요?
안은수 : 우리 부모 바보야라고 했었을 때 누군가 맞아 바보야라고 하면 기분이 나쁜 것처럼 저도 연기 관둘래라고 했었을 때 남들이 그래 연기 관둬라고 하면 아니, 안 관둘 건데 약간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서른까지 한 스텝도 못 나가면 연기 그만둘 거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아마 못 나아갔어도 그만두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했을 것 같아요. 그런 마음 상태일 때 감독님이랑 얘기를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정지혜 : 영진의 첫 등장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배우님이 갖고 있는 뭐랄까요? 골격이 굉장히 영화 속 영진이라는 인물을 만드는 데 아주 주요했다고 봤거든요. 몸의 태랄까요? 태라는 표현보다는 골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굉장히 목석같은 느낌도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잔동작들을 넣어서 대사가 많지 않은 역할임에도 몸에서 주는 느낌과 기운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이 준비 과정에서 있었던 것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안은수 : 말씀해 주신 대로 준비는 해봤어요. 근데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은 조금 특이하지만 그래도 너무 벗어나지는 않는 영진한테 어느 정도 맞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잘 얻어걸린 것 같아요. (웃음) 그렇게 자세를 잡고 있으면 감독님이 옆에서 그거 좋다고 말씀해 주셔서 저는 잘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정지혜 : 감독님은 어떤 게 좋으셨던 거예요?
이종수 : 저는 사실 처음에 만나서 리딩할 때 구체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보다는 되게 추상적으로 쭈뼛쭈뼛해줘라라고 요청을 했어요. 그런 식으로 대화를 많이 했는데 사실은 안은수 배우가 준비를 많이 했어요. 손을 쓰기도 하고, 원래 거북목인데 더 심한 거북목을 만들기도 하고 되게 많이 준비를 해왔어요.
정지혜 : 안은수 배우님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신데 이 영화에서는 볼 기회가 없었네요. 무표정하고 거의 대사가 없어서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안은수 : 사실 제가 그때 대사를 맛깔나게 뱉는 데 물이 잔뜩 올라 있었거든요. (웃음) 제가 연기를 해오면서 지금처럼 대사를 잘 소화하는 능력이 최고치에 올랐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그런 상태일 때 <부모 바보>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대사가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아마 자세나 몸 표현에 좀 더 신경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지혜 :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또 재미난 요소 중에 그 캠코더 영상이 들어가 있잖아요. 첫 장면에서도 전망대에 올라서 뭔가를 바라보는 시점숏으로 나오기도 하고, 영화 전반적으로 누구의 시점인지는 명확하지 않은데, 혹은 어떤 풍경숏일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계속 들어가 있어요. 홈비디오 촬영은 처음부터 그 아이디어가 시나리오에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디벨럽 하는 과정에서 촬영을 따로 더 하신 걸까요?
이종수 : 사실은 계획을 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찍을 때마다 촬영감독님이랑 이야기하기를 다른 영화들에서 숏 사이즈가 작아지고 커지면서 주변 부분을 강조한다든지 주인공의 어떤 심리를 많이 따라가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고, 그러니까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집중하고 조명하는 느낌보다는 어딘가 옆에 계속 붙어서 훔쳐보는 것처럼 찍자라고 했거든요. 화면 자체가 관객의 어떤 시점으로 보이기를 원했던 것도 있었어요. 그런 캠코더숏들이나 시점숏들을 가지고 사람이 기억하는 시점을 많이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기억 속에 있는 시점이요. 예를 들어서 지금 이 공간 신영극장을 내 기억 속으로 상상할 때 그 안에서 줌인과 줌아웃이 가능해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것들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정지혜 : 보는 것이 줌인되듯이 집중해서 보는 것도 생기고 줌아웃돼서 전경을 바라보게 되는 기억들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리고 영진에게 시점이 넘어갈 때마다 굉장히 환상적인 신들이 있잖아요. 영화에 들어가는 음악도 직접 만드셨대요. 그런 장면들은 굉장히 묘하더라고요. 하프 연주하는 것도 그렇고 은수 배우님은 편집본 처음 보시고는 어떠셨어요?
안은수 : 저는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어요. 지금 와서 말씀드리자면 우리 영화가 대체 어떻길래 부산국제영화제서 상영할 수 있을까? 진짜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왜냐면 이렇게 편집을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어요. 중간중간 하프 연주 그런 게 장면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에서는 저희 대사로만 촬영이 진행되니까. 근데 부산국제영화에서 봤는데 뭐랄까 감독님이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이렇게 할 거면 진작에 말을 해주시지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한편으로는 힘을 빼서 뭔가 더 잘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종수 : 사실 시나리오에는 다 적혀 있었거든요. 화면이 크로스 오버된다라고 시나리오에는 적혀 있었는데 한 문장으로만 써 있다 보니까.
안은수 : 상상이 안 됐어요. 그 문장이 이렇게 표현될 거라고는. 근데 저는 취향 저격을 당했다고 해야 되나 물론 팔은 안으로 굽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저는 되게 좋았어요.
정지혜 : 저도 좋았어요. 많이들 좋아하실 것 같고. 장면에 대해서 더 궁금해하실 분도 계실 것 같아요. 꿈결 같기도 하면서 굉장히 묘한 이미지 연출을 보면서 오프닝에서의 전망대신도 그렇고요. 음악이랑 홈비디오 영상의 조합 때문인 건지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2010년대 한국 독립영화에서 봤던 몇몇 감독님들의 실험성 강하고 저항의 어떤 방식, 그게 꼭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저항이 아니라, 기존의 영화 문법과 다르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는 영화들을 떠올리게도 됐어요. 감독님께서도 꽤나 독립영화를 오랫동안 봐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라도 인상적으로 봤던 어떤 영화들이 떠오르는 것들이 혹시 있으실까요?
이종수 : 저 역시도 2007년 정도부터 독립영화 관객이었는데요. 그때 CGV보다 싸니까 상상마당에서 5천 원에 영화를 자주 봤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가장 임팩트가 강하게 남았던 게 양익준 감독님의 <똥파리>나 이창동 감독님의 <시>였고 진짜 뭐랄까요? 그 당시를 씹어먹었던 그런 독립영화들을 많이 보고 자라왔습니다.
정지혜 : 연기에 대해서도 감독님 스스로도 관심이 꽤 있으시대요. 그래서 앞으로는 연기와 연출을 겸하고 싶다는 그런 꿈도 내비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배우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떻게 좀 가능성이 있던가요? 현장에서 감독님의 연기에 대한 이해와 디렉션을 봤을 때 어떠셨어요?
이종수 : 안은수 배우가 되게 보수적인 배우예요. (웃음)
정지혜 : 네, 엄격하시군요. 아직은 섣불리 말을 하기가 어려운 거죠.
안은수 : 근데 감독님 마스크가 굉장히 특별하셔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강점을 하나 가져가는 게 있는 것 같고요. 말씀도 유려하게 잘하셔서, 보통 말 잘하는 분들이 연기도 잘하거든요. 한번 보고 싶네요. 다음에 연기하시는 걸.
정지혜 : 이번 영화가 물론 주연 배우 세 명의 힘으로 나아가는 영화이지만, 특히 안은수 배우님과 윤혁진 배우님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신중하게 이분들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연락을 드린 걸로 알고 있어요. 그만큼 배우의 연기가 이 영화의 승패를 가린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어떤 이유였을까요?
이종수 : 우선은 저는 배우들한테 요구하기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연기를 해달라고 요구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말하듯이 연기하는 것이 좋고, 사실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연기였거든요. 지금은 연기 공부를 배우들이랑 많이 하기도 하고, 연기 디렉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6개월밖에 안 지났지만 더 안 좋았어요. 그래서 배우들이랑 소통이 솔직히 원활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저도 맞춰보려고 했고, 배우들도 저의 그런 마음을 알아줬는지 많이 맞춰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제가 연기를 배우는 이유는 배우들이랑 대화하려고 배우는 거거든요. 근데 인터뷰에서 그렇게 나왔군요. 이제 하나 배웠습니다. 인터뷰에서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된다라는 걸. (웃음)
정지혜 : 박제가 되어 있더라고요. (웃음) 배우와 대화하는 방편으로 연기를 이해하고 공부하고 계신 것까지 들어봤고요. 관객분들 질문이나 소감 생각하시는 사이에 제가 조금 더 여쭤볼게요. 의자에 있던 얼음은 무엇일까요? 영진의 어떤 행동의 결과일까요? 배우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안은수 : 네 저도 그렇게 봤어요. 영진이 의자를 삐걱삐걱 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걸 돌멩이가 아니라 녹아 없어질 수 있는 얼음으로 했다는 게.
정지혜 : 사실 저도 이제 영진의 카메라일 거다라고도 생각하면서 또 누구의 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특히 이제 후반에 배치가 되어서 더 그런 인상을 주는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 딱 클리어한 답을 주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종수 : 그 장면 같은 경우는 그냥 아슬아슬해 보이고 싶었고, 어떤 것들을 받치고 있는 존재들이 되게 불안해 보이길 바라는 바람이었습니다. 촬영 장소가 저희 집이거든요. 혼자 의자를 잘라가지고 얼음을 받쳐놓고 촬영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이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형상 같은 걸 창작자가 만들었을 때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클리어한 답을 주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또 단정 짓기도 싫고. 영화라는 게 결국에는 예술이라는 게 창작자랑 관람자랑 같이 이야기들을 나누고, 평론가님들의 평론이 더해지면서 예술로서 형태가 갖춰지는 거라서 거기에 대해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지혜 : 어찌 보면 우문에 현답을 주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굉장히 궁금하고, 아직 내 안에서 해소되지 않은 어떤 장면이 있는데 감독님에게 여쭤볼 때는 클리어한 답을 바라면서도 또 아니길 바라는 그런 복잡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 고가는 어디인가요? 장소를 찾는 과정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동일한 장소를 다르게 찍기로 계속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처음엔 영진만 있다가 진현과 같이 있다가 또 한 명은 사라지고 같이 왔을 것 같기도 한데 없고 그런 긴장감을 주기도 하면서, 고가라는 장소가 주요한 변화들이 생기는 장소이니까요.
이종수 : 우선은 장소를 정할 때 진현이의 집 말고는 모든 장소가 고가 밑에 있기를 바랐어요. 주차장도 고가 밑에 있는 주차장으로 선정했고, 복지관도 잘 보면 고가 밑에 복지관이 있어요. 다리 밑에 있는 세계를 구축하고 싶었고, 영진이가 속하는 곳은 한남동의 되게 잘 사는 동네에 있는 고가거든요. 지금 대통령도 계시거든요. 저희가 촬영할 때 애를 많이 먹었어요. 관저 쪽을 찍지 말라고 해서.
정지혜 : 의외의 공간이네요.
이종수 : 사람들이 요즘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인데 한강진역 1번 출구 바로 앞이거든요.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는 동네 한가운데 있어서 등잔 밑 같은 장소였고요. 다리 밑 공간 세팅할 때 저희는 간이침대 하나만 갖다 놨어요. 나머지는 어떤 사람이 실제 노숙했던 흔적이에요. 그리고 이제 진현이가 멍하니 쓰레기봉투를 바라본 뒤에 ’FUCK YOU’라고 써져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희가 쓴 게 아니에요. 근데 온라인에서 그 장면을 보고 해석을 하시더라고요. ‘YOU’가 아니고 ‘SUN’이다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고요. 반복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사실 영진이의 입장에서는 계속 좋은 상황만이 반복되기만을 바라는 그런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길 바랐고, 진현이한테는 어떤 것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도록 시나리오를 썼어요. 진현이는 동생을 잃었던 기억이 혹시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영진이는 오늘 하루처럼 진현이네 집에서 지냈던 게 반복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근데 똑같은 상황이 복제가 안 되는 거죠.
관객 1 : 컴퓨터 앞에서 한 명은 게임하고 한 명은 옆에 앉아서 지켜보는 장면을 저는 좋아하거든요. 왜냐면 저 어렸을 때도 집에 컴퓨터가 한 대여서 누군가 게임을 하면 옆에 붙어서 그걸 보고 있게 되더라고요. 보통 대화를 하면 상대의 눈을 보고 대화를 하기 마련인데 그 장면에서는 관객이 두 사람의 얼굴을 같이 보면서도 주로 한 사람이 얘기하게끔 만든 이유가 뭐였을지 궁금하고요. 또 하나는 뭔가 어렸을 때 감독님의 어떤 감정이나 기분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구성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종수 : 저도 친형이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많이 했어요. 그 구도가 저도 되게 묘한 안점감이 있다고 느껴져서. 사실은 그것도 진현이에게는 반복인 거죠. 동생과의 애정이나 기억 같은 게. 이런 말을 하면 관객들이 싫어할지도 모르겠는데요. 제가 한동안 인터넷 스트리머를 보는 재미에 빠져 있었어요.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못 만들고 상황이 좋지 않아서 너무 힘들 때 트위치라고 침착맨같은 사람들 영상을 밤새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보는 걸 좋아했어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되게 안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게임 구경이라는 게 그런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촬영 감독님하고 이야기할 때 그 구도를 침착맨 구도라고 얘기했거든요. 영화 안에서 어떤 인물이 내 눈을 보거나 혹은 어떤 인물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저는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불편할 때가 있더라고요. 뭔가 관찰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근데 침착맨을 보면 채팅창 보면서 카메라 보고 이야기하는데 스트리머들이 그렇게 하는 영상을 보면 이상하게 훔쳐보고 있는 기분도 들고, 아무것도 강요받지 않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런 구도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기억도 많이 들어가 있죠. 친형이 저한테 저렇게 앉혀 놓고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 이종수 이리 와보라고 하면서 의자를 가져와요. 형이 컴퓨터 하면서 요즘 담배 피우냐고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정지혜 : 영화에서 유독 좀 잠자는 장면이 많잖아요. 잠을 서서도 자고 앉아서도 자고. 밤에 잠을 잘 못 자서라고는 하는데, 거의 기면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론 피곤해서일 수도 있지만 유독 영진에게 잠이라는 걸 주신 이유가 있을 것 같거든요. 배우님에게도 잠자는 연기는 어떤 것이었는가를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안은수 : 저는 잠 연기를 할 때 입을 좀 많이 신경 쓰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쩝쩝댄다든지 그런 부분이 실제로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감독님께 잠에 대해서 디렉팅 받은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감독님이 말씀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이종수 :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어떻게 했죠? 약간 타이밍이 되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말하는 도중에 잠을 잔다는 게 시나리오에 써 있었어요. 진현이가 대사를 쭉 치는데, 시나리오 거의 반 페이지씩 있거든요. 대사 하는 중간에 영진이 졸기 시작한다 뭐 이렇게 썼지만 사실은 배우가 실제로 연기를 했을 때 현장에서 보이는 리듬이 있고, 그걸 직접 봤을 때 생기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제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언제 잠들지, 어떻게 잠들지에 대한 이야기를 되게 많이 나눈 것 같아요. 현장에서 되게 잘해주셨고, 어떻게 디렉팅 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정지혜 :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안은수 : 얘기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중간중간에 잠을 자는 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감독님이랑 많이 얘기를 나눴어요. 그때 하셨던 말씀이 잠은 도피하는 마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내가 졸기 시작하는 타이밍을 감독님이랑 잡아봐야겠다 해서 부모님 얘기가 나올 때로 타이밍을 잡았어요. 영진에게 도피하고 싶은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이종수 : 이제 기억이 났습니다. (웃음) 잠이라는 모티프 자체가 도피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다리 밑에 있으면 차도 많이 지나가고 쿵쿵거리는 소리도 많이 나고, 실제로 차들이 요철 같은 걸 밟고 지나가면 엄청 큰 소리가 나거든요. 그런 곳에서 아무리 26살 청년이라고 해도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런 곳에서 오랜 기간 있다가 집에 왔을 때 잠은 무조건 쏟아져야 되는 게 맞는 것 같고 또 오랜만에 씻었잖아요.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좀 그렇지만, 저도 사실 잠에서 깨기 싫을 때가 많아요. 깨어나면 눈으로 뭔가를 보고, 보기 시작하면 내가 또 인지를 해야 되니까. 영진의 입장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잠이라는 요소를 넣었던 것 같아요. 원래 잠자는 장면이 더 많았는데 연기를 하는 배우가 그건 말이 안 된다, 어떻게 그러냐 얘기하면서 서로 조율을 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2 : 영화를 볼 때는 사실 좀 친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GV 들으면서 영화 많이 이해하게 돼서 좋았고요. 영화 내용하고 조금 다르게 음악 템포가 좀 빠르잖아요. 음악 배치랑 템포가 빠른 음악을 선정하신 이유가 궁금하고요. 인물 이름이 한 번씩 나오는데 그런 구성을 택하신 의도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종수 : 우선 음악을 말씀드리자면,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제작 예산이 700만 원이다 보니까 다른 음악을 사용할 엄두는 당연히 나지 않았고, 마침 제가 음악을 만들 수는 있어서 영향받은 뮤지션들의 어떤 스타일에 근접하게 최대한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바로 전에 찍었던 중편 같은 경우는 42분짜리인데 음악이 11개가 들어갔거든요. 그 음악을 직접 만들면서 연마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뭔가 집중을 가져다준다고 생각을 했고, 이름도 같이 말씀드리면 누군가에게 집중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 각 장을 이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름은 부모가 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의 미래를 부모가 정해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이름을 크게 넣으면서 이 사람들한테 조명을 한번 줘볼까? 그런 생각이었어요. 답이 됐는지 모르겠네요.
정지혜 :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중편을 보고 싶네요. 11곡이 들어가 있는. <부모 바보> 음악 너무 좋았어요. 엄청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긴 이야기 좀 나눠봤는데 어떠셨는지 궁금하고요. 아까 개봉도 준비하신다고 하니까 내년엔 또 어떤 계획들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연기도 계속하실 것 같아요. 대사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작품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수 배우님부터 말씀을 좀 들어볼까요?
안은수 : 저도 진혁이처럼 맛있게 대사 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오면 좋을 것 같고요. 오늘 너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GV를 한 것 같아서 속이 시원했어요. 보통 GV 끝날 때 되면 덜덜 떨면서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좀 더 잘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는데 오늘 같은 경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오늘 영화 봐주셔서 감사드리고, 연말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고, 내년에 바라고 희망하는 일 다 잘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종수 : 저는 요즘 PD님이랑 개봉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관객이었을 때랑 많이 상황이 바뀐 것 같고요. 다양한 영화가 극장에 올라오는 경우도 많이 없고, 영화를 본다는 문화 자체가 빛을 바란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이 좀 아프네요.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 공연을 보러 간다든지, 좋아하는 감독이나 장르의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이런 문화들이 코로나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취향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전과 달리 많이 달라진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는 독립영화를 보러 오는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그런 문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이제는 그런 문화가 많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고, 좋은 영화들이 개봉한 후에 관객 수를 보면 어떻게 되려고 그러나 절망적인 순간들도 많았는데요. 그러면서도 서울독립영화제나 부산국제영화제 이후에도 아트나인이나 신영극장에서 상영을 하면서 프로그래머님들이 그런 암울한 상황에 대해서 언급도 안 하시고 되게 잘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나보다 되게 훨씬 나은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죠. 그런 분들을 보고 다니고 있어서 좀 춥지만 따뜻한 것 같고요. 오늘 날씨가 좀 따뜻한데 영화 보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너무 영광스러운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지혜 : 그러게요. 뭔가 감독님이 말씀하신 독립영화 보러 가는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을 가졌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요즘은 좀 쓸쓸한 마음도 드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틈에 이렇게 극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중해서 같이 이야기 들어주시고, 영화 끝까지 보시고 대화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부모 바보> 모호하고 굉장히 낯선 방식이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이고요. 감독님의 다음 작업, 물론 개봉도 그렇고 계속 응원하고 싶습니다. 은수 배우님 대사 많이 하시는 거 영화에서 꼭 보고 싶습니다. 올해 너무 고생 많으셨고 내년에 신영극장에서 또 뵀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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