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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투어> 리뷰 : 경계를 건너는 여정

REVIEW 리뷰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4. 3. 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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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투어>

경계를 건너는 여정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긴 듯한 영화이다. 이전까지 세상의 전부였던 가족과 친구라는 울타리 밖의 모든 것들, 그것들이 원래 존재하고 있었는지조차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아주 사소하고 흔해 빠져서 전혀 의식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삼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극적인 인식과 사유의 전환이 아이들의 손에 달린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통해 스크린에 펼쳐진다. 그리고 미지의 것에 인력처럼 작용하는 그 왕성한 호기심은 출입금지라는 표지판 정도로는 절대로 꺾을 수 없다. 문득 길을 가로막고 나서며 문화재라 들어갈 수 없다고 막아서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더욱이 난생처음 느껴볼 이성에 대한 끌림은 무엇보다 큰 진동으로 온통 몸과 마음을 흔들기 마련이다.

 

 실제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Yamaguchi Center for Arts and Media, YCAM)의 DNA 채집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이기도 한 스마트폰을 활용해 샘플 채집 장소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내는 과정은, 자연스레 참가자들이 자신을 둘러싼 풍경과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징검다리와 나뭇잎, 비둘기와 같이 주변의 흔한 풍경을 찍으며 걷는 발걸음과 함께 가볍게 흔들리는 앵글은 대혼란과 변혁의 시기(!)를 지나는 사춘기의 그 불안정하지만 아름답고 풋풋하며, 풀꽃내음을 은은하게 풍기기도 하는 복잡다단한 내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산행이 힘들어 포기할까 싶다가도 친구가 내미는 손을 잡고 다시 길을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영화 자체도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영화를 실험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장르적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순간에 촬영자가 촬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프레임의 변화도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특히, 인턴인 대학생 우메(이토 호노카)가 YCAM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관객을 바라보며 느닷없이 나와 같이 DNA 채취하러 가자”라고 말하는 장면은 뜻하지 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이것이 같은 채집 프로그램의 다른 팀에 인턴으로 참여하고 있는 전 남친에게 다시 사귀자고 고백하는 것으로 밝혀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스크린 밖의 관객들에게 영화를 같이 만들자는 권유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 우메의 클로즈업 장면을 계기로 영화는 극영화적 성격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애정의 삼각관계라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전 남친에게 재결합의 고백을 단호하게 거절당한 우메는 함께 채집활동을 하던 두 중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다. 슌(야슈미츠 류타로)은 고등학생이 되면 우메에게 고백하겠다는 결심을 친구인 다케(쿠리바야시 오스케)에게 털어놓지만, 그 말을 들은 다케는 자신의 사랑 고백을 담은 편지를 서둘러 우메에게 전달한다. 물론 다케의 귀엽지만 용감한 고백을 우메는 다정한 말로 거절하고 다독이지만, 다케는 당연히 상처를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진한 사랑의 이야기 보다 이렇게 미숙하고 설익은 감정이 얽히고설키는 상황에 끌리기도 한다.

 

 특히, 필자는 이 부분에 소위 꽂혀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우메의 권유대로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두 아이들이 우메와 함께 채집을 하는 동안 마음 속에 아른아른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을 그 달달한 감정과 우연히 맞잡았던 손으로 전해졌을 그 작고 귀여운 사랑의 느낌, 그리고 다른 아이가 느꼈을 질투와 같은 세세한 감정이 모두 연상되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수십 년 전(하, 그게 벌써 수십 년 전이라니 ㅠㅠ), 필자가 중학생일 때 흠모하던 미술선생님의 손을 잡고 걸으며 느꼈던, 마치 홀로 무중력 상태로 진입하며 샤랄랄라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던 그 몽글몽글한 감정의 기억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금, 뭉게뭉게 피어오르듯 되살아났다. 선생님의 얼굴은 이제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묘한 그 감정만은 놀랍게도 여전히 마음속 어딘 가에 머물다가 이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복원된 것만 같다.

 

 한창 인생의 경계를 지나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과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은 미야케 쇼 감독이 펼쳐놓는 이 여행은 앞으로의 여정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아픔을 딛고 더 크고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고, 감독은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며 그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갈 것이다. 경계를 넘어서는 일은 언제나 두려움을 가져오게 마련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게도 한다. 필자도 이제 또 하나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신영과 독자들과 함께 했던 오늘까지를 멋진 추억으로 남기고,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하루하루가 펼쳐지길 기대해 본다. 이젠 안녕.

 

- 관객리뷰단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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