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씨네토크
2024.9.20
초청 : 장건재 감독
진행 : 김형석 춘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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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 안녕하세요. 저는 춘천영화제 프로그래머 김형석이라고 하고요. <한국이 싫어서> 장건재 감독님 모시고 영화 이야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건재 : 장건재라고 하고요. <한국이 싫어서> 만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형석 : 영화 재밌게 보셨나요? 수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해보거든요. 최근 작품 중에는 <한국이 싫어서>가 지금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 되새길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도 장편을 여러 개 만드셨는데 대부분 직접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셨단 말이에요. 근데 이번 작품은 원작이 있고, 각색해서 만드셨는데 이 원작을 가지고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어떤 계기가 궁금해요. 그 과정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장건재 : 소설은 2015년도에 읽었어요. 8월에 출간이 됐는데 저는 11월에 읽었습니다. 터미널에 있는 서점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일단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 내가 나한테 쓰는 일기처럼 1인칭 내레이션으로 소설이 펼쳐지거든요. 친구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그래서 되게 가까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읽었어요. 그리고 통렬하게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날것의 언어로 쓴 소설이었어요. 그때 당시 저는 30대 후반이었고, 제 삶에 변화가 있다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사실 소설 속 주인공하고 저하고는 성별도 다르고 처지도 조금씩은 차이가 있죠. 만약에 제 또래 아저씨가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이야기였다면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소설 속 인물이 갖고 있는 불만과 제가 갖고 있는 그때의 위기감 혹은 어떤 것들이 좀 링크되는 게 있었어요. 지금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요. 그래서 이 원작 소설을 가지고 영화로 경유하는 시도를 해보면 뭔가 여러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결심을 한 게 2016년도입니다. 그렇게 시작이 됐던 것 같아요.
김형석 : 장건재 감독이 단편이든 장편이든 쉬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하는 감독인데, 2014년 <한여름의 판타지아>를 만들고 나서 2020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달이 지는 밤>이 상영을 했죠. 이상하게 필모그래피에서 5년 정도의 공백이 있는 시기가 있어요. 그 기간이 <한국이 싫어서> 작품과도 맞물려 있거든요. 영화를 꾸준히 내놓던 감독이 왜 5년 정도의 시간이 비어 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만나면 꼭 물어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장건재 : 말씀하신 대로 공백기 이전에 3편 정도 되는 독립 장편을 만들었어요. 2년에 1편씩은 만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계속 부지런히 작업을 했던 시기였어요. <한국이 싫어서> 작업 준비 기간이 1~2년은 필요하다고 생각은 했었어요. 해외 프로덕션도 있을 테고, 소설은 경장편이지만 8년 정도 되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기술적으로 줄이는 각색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저는 상업적인 영화로 만들기보다는 작은 사이즈로 만들려고 공공기관이나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에 계속 문을 두드렸는데 잘 안 됐어요. 제가 만든 영화가 독립영화 중에서는 그래도 관객분들한테 사랑을 받은 편이고, <한국이 싫어서> 같은 경우는 원작이 베스트셀러다 보니까 많은 투자를 받지는 못해도 어렵지 않게 제작에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2년 정도 지나간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다른 프로듀서를 만났죠. 규모를 좀 키워보자, 스타 캐스팅을 하고 몸집을 불리는 게 오히려 이 영화 방향과 맞지 않겠냐. 그렇게 방향을 선회하고 산업에서 활동하는 작가하고 또 한 1년 정도 각색하는 시간을 가졌고요. 그렇게 한 해 한 해 갔던 것 같습니다.
김형석 : 소설이 2015년에 나왔으니까 거의 한 10년 전인데, 계나가 싫어서 떠났던 한국의 어떤 모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기우일 수 있겠지만, 소설이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공감했지만 영화로 나올 때도 사람들이 공감해 줄까? 그런 생각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영화가 시대나 현실과는 상관없이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만, <한국이 싫어서>는 시대와 되게 맞물려 있는 테마거든요.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장건재 : 저도 소설을 읽었을 때, 소설이 가지는 시의성과 당대의 한국 사회의 어떤 면들을 되게 재빠르게 포착한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소설의 장점이긴 했거든요. 시의성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초반에는 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영화를 각색하면서는 다른 이야기로도 확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2015년도쯤에 한국 청년들의 글로벌 이동이 진짜 많았거든요. 계나 같은 인물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 시기에 폭발적으로. 그리고 이민자를 만나면서 이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좀 생겼거든요. 그러면서 좀 거창하지만 그런 이동이 새로운 디아스포라라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이전에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면서 북미나 영미권으로 갔던 사람들과 호주나 뉴질랜드 혹은 다른 곳으로 이민한 사람들은 사연과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새롭게 인식을 해보자, 그런 변화를 고민하면서부터 사실 저는 이야기가 좀 더 흥미로워졌거든요. 프로듀서들은 시의성에 대한 고민들을 계속했죠. 촛불 정권으로 바뀌고 한국 사회가 전보다 좋아졌는데 영화를 만드는 게 맞을까?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 K-방역이라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방역이나 의식 수준을 부러워하고, 그리고 BTS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다 보니까 마켓에서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한국이 되게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인데 한국이 왜 싫은지? 주인공은 왜 그렇냐? 근데 저는 영화 준비하고 공부를 하면서는 다른 이야기로 확장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형석 : 각색 얘기가 나와서 원작과 비교했을 때 디테일하게 달라진 점들도 있지만 원작이 좀 더 발랄했던 것 같아요.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생각해 보니까 원작에는 제시되지 않았던 죽음에 대한 암시와 그것과 관련된 사건들 때문인 것 같아요. 영화에서 메인 플롯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그런 사건으로 등장하거든요.
장건재 : 취재하느라 뉴질랜드의 대여섯 군데 도시를 방문했어요. 그곳에서 유학생이나 워홀러나 한국 이민자들을 만났어요. 뉴질랜드에 가신 분들이 대체적으로 사연이 되게 기구하거든요.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또 뉴질랜드는 큰 지진이 몇 번 났었거든요. 그때 죽은 사람들도 되게 많고. 그게 저한테는 인상적인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의 청년 자살률이 되게 높잖아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당시에 특히나 취준생들, 그리고 고시에 실패해서 자살한 사람들의 뉴스들을 많이 접했어요. 고시를 몇 년 동안 준비한 청년이 있었는데,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이 노량진으로 오신 거죠. 짐을 싸서 정리하고 내려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 청년이 자살한 거예요. 그리고 또 그 시기에 접한 다른 뉴스인데요. 집에다가는 고시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계속 출퇴근을 하다가 어느 날 목숨을 끊는 청년도 있었어요. 그 두 청년의 감정에 제가 되게 깊이 이입을 한 것 같아요.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근데 그 마음이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뭔가 이런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경윤이라는 인물로 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영주권을 따고, 시민이 되고, 가정을 이룬다면 하준이네 가족처럼 집을 사고 대출을 받아서 평생 빚을 갚으면서 노년에 좋은 복지를 기대하면서 사는 게 보통 이민자 사회의 어떤 꿈같은 거거든요. 근데 계나가 그 가족을 보면서 내가 결국 여기서 자리 잡고 산다면 꿈꿀 수 있는 모습이 저런 걸까? 혹은 내가 저런 걸 꿈꾸고 있는 걸까? 생각하는 거죠. 그런 한인 가족을 모델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만났던 분들 가족 면면들이 그런 어두움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나이 들어서 이주하신 한국 남자들이 적응을 잘 못하거든요. 언어도 되게 느리고 이민해서 가면 늦게까지 문 여는 식당이 없다 보니까 술을 못 먹어서 되게 힘들어하시고. 그러다 보니까 한국 뉴스에 되게 집착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관객 1 : 영화 잘 봤습니다. 중간에 행복 전도사가 나오잖아요. 돈이 최고가 아니라 행복이 최고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근데 요새는 돈과 행복의 상대적 관계가 헷갈릴 때도 있더라고요. 감독님이 행복 전도사 장면을 영화 속에 넣으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장건재 : 첫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 몇 년 사이에 강연 시장이 되게 커졌잖아요. 행복이 뭔지에 대한 강연,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상담도 있고, 또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도 많더라고요. 근데 그런 강연에 대해서 저는 약간의 비판적인 시선이 있어요. 마치 주식 고수들이 주식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연하지만 그런 분들 보면 사실 주식으로 번 돈보다 강연으로 버는 돈이 더 많거든요. 행복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고, 돈이 아니라 행복을 모아라,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말처럼 보이지만 계나는 입을 삐죽거리잖아요. 돈이 최고라고. 제가 계나 입을 통해 그런 강연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나 반응을 좀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저도 돈이 많으면 살기 편하니까 좋은데, 그 정도를 지키는 게 항상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어느 게 적정 수준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돈과 행복의 관계에 있어서 정도를 지키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관객 2 : 제가 남미로 몇 개월 동안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계나처럼 여행 온 한국의 젊은 청년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젊은 청년들과 얘기해 볼 기회가 있었어요. 기성세대 입장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에 뭔가 뚜렷한 목표 없이 유영하듯 그냥 떠다니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건 영화 말미에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 나오잖아요. 저는 감독님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가 그 안에 함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한국이 싫어서 떠난 주인공과 추위가 싫어서 하와이로 가는 펭귄처럼. 자기가 살아가는 환경과 삶의 기반에 대해 불안정성을 느끼는 상황이고, 설령 떠났다고 하더라도 자기 생존의 위협까지 받을 수도 있잖아요.
김형석 : 아까 감독님이 디아스포라라는 표현을 썼잖아요. '한국이 싫어서'라는 게 여러 가지 반문들이 나올 수도 있고, 질문이면서 내용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많은 관객분들 만나면서 행복에 대해 얘기해보시는 시간들이 분명히 있으셨을 것 같아요. 한국이 왜 싫은지부터 시작해서 그러면 행복이 뭔가라는 보편적인 문제까지 연계해서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장건재 : 제가 영화를 만들다 보면 영화제 때문에 해외에 갈 때가 있거든요. 보통 현지에 있는 학생분들이 통역을 해주세요. 20대 중후반 정도 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요. 그러면 대부분 비슷한 정서가 있어요.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요. 사회가 공정하지 않고, 비전이 없다는 게 큰 이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생애 주기에서 다양성이 없잖아요. 어느 시기가 넘어갔을 때 취업이나 결혼을 하지 않으면,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 같은 취급을 받잖아요. 그런 것에 대해 저항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성별이나 계층도 다르지만 한국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잖아요. 열심히 한 사람한테는 어떤 보상이 주어질 거라고. 사실 계나 입장에서 보면 출발선이 다르다고 느끼거든요. 저는 진영이라는 인물을 건전한 보수 가치를 지닌 인물이라고 보거든요. 성실하게 살면 보상받을 거라는 순진한 믿음 같은 게 있는 거죠. 근데 계나나 경윤같은 경우에는 그런 믿음이 삶에서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요. 계나는 어떻게 보면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찍 취직도 했고,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잘 헤쳐나가고 있잖아요. 영화에는 나오지는 않지만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리는 과장이 결국에는 회사에서 잘리거든요. 제가 그 장면을 찍었다가 편집 과정에서는 뺐어요. 사실 정규직도 고용 불안정성에 대한 위험이 있잖아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여기서 버텨봐야 뭐 그런 사람밖에 안 되는 정서가 있잖아요. 계나도 아마 그런 것 때문에 한국 사회를 탈출하자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유영한다는 표현 되게 근사하게 해 주셨는데 저도 딱 그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되게 좋은 학교 나와서 미국으로 유학 가고 거기서 석박사를 하고, 다시 한국 돌아와서 교편 잡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죠. 근데 한국 밖으로 나가 있는 친구들을 봐도 요새는 그런 수순들이 다 깨져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밖에서 공부 마친 사람들이 한국으로 들어오지도 않아요. 한국으로 다시 가봐야 일자리도 없으니까.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땅에 발을 닿지 않고, 유동한다는 느낌을 저도 많이 받았거든요. 계나도 그런 인물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마지막 장면을 어디론가 떠나는 걸로 끝내놓은 것도 계나가 삶의 환경을 바꾸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인물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에 대한 존경도 있지만 모험하는 인간에 대해서 저 나름의 판타지와 존경이 있어요. 하물며 펭귄 이야기도 그런 것 같아요. 물고기가 물 밖에서 못 사는 것처럼, 펭귄이 따뜻한 나라로 가서 산다는 게 모순이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펭귄의 모험을 볼 때 우리가 지지하는 면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인간상을 좀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김형석 : 저는 영화가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길’의 영화와 ‘집’의 영화. 주인공이 현실을 떠나서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게 목적인 영화가 있고, 결국 어딘가에 정착하는 영화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구도의 심정인 거죠. 근데 이 영화는 두 개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계나는 집을 벗어나서 길을 떠났지만, 새로운 집을 찾으려고 해요. 그런 면에서 되게 독특해요. 한 나라에 같이 살고 있긴 하지만, 각자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다르거든요. 그만큼 사회의 구성원들을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사회학적인 분석까지도 가능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질문 있으신 분 계신가요?
관객 3 : 집을 찾아가는 영화가 있고 길을 찾아가는 영화가 있다고 방금 말씀해 주셔서 생각이 들었는데요. 마지막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계나가 다시 떠나잖아요. 그게 진짜 집을 찾으러 떠나는 건지 아니면 계나가 길 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다른 길을 찾아보는 건지 감독님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굳이 한국을 떠나야 되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거든요. 남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또 떠나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보여서요.
장건재 :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시나리오 쓰면서도 많이 받은 질문이에요. 계나가 꼭 떠나야 하는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떠나는 것에 대해 이해받지 못하잖아요. 순댓국 먹을 때 밖에 나가봐야 외노자 생활이 펼쳐지는 거고 어딜 가나 똑같다고 남자친구가 말하잖아요. 아마 부모님들도 계나한테 그런 얘기를 했을 것 같고. 계나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설명을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계나가 작은 변화로는 삶이 바뀔 것 같지 않아서 뭔가 크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한국을 떠났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이 주는 자유로움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또 계나가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한 어떤 변화들이 있겠죠. 그리고 타지에 나가봤더니 별 거 없다는 식으로 영화 속에 명시적으로 담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해 못 하는 어떤 부분들이 생기더라도 이야기로 확장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 정도의 질문이 생기면 이 영화의 목적은 충분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영화를 만들고 나서 깨닫게 된 건데 계나가 영화 속에서 30살이 되거든요. 10년 전에 고3이거나 대학교 1학년이었을테니까 또래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대고, 2016년에는 강남역에서 20대 여성이 묻지마 살인 사건을 당하잖아요. 그리고 직장 생활하면서는 이태원 참사를 목격한 세대인데 한국 사회의 타임라인을 펼쳐놓고 보면 계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생존하는 여성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영화는 그런 참사들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계나가 그런 참사에 대해서 모르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로 돌아와서 제가 계나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사는 어떤 피로와 고난의 요소들을 집약해서 보여준다는 게 저한테는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설명하기 되게 어려운데요. 사실 그즈음에 많은 독립영화들은 여성 서사들을 되게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거든요. 다큐멘터리도 그렇고. 지금 상영하고 있는 <딸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래서 좀 다른 지점을 상상하게 하고 계나의 결심이나 변화를 관객들한테 감지하는 방식으로 질문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좀 나이브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여성주의적인 시선이나 조금 더 래디컬한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 조금 순진하거나 평이한 면이 분명히 있어요. 영화가 가지는 톤 앤 매너는 그렇게 설정을 한 것 같습니다.
김형석 : 영화에서 계나 여권이 잠깐 보일 때 93년생으로 나와 있거든요. 그 세대가 겪었을 사회적 트라우마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재되어 있는 부분에 대한 말씀이셨던 것 같아요.
관객 4 : 저는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럽고, 인상 깊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연출하실 때 배우분들한테 어떤 식으로 연기 디렉팅을 하시는지, 디렉팅 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장건재 : 작년에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하고 개봉까지 시간이 좀 걸렸거든요. 김형석 프로그래머님하고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고아성 배우의 좋은 얼굴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의기소침해 있었던 시기에 그런 응원을 해주셔서 힘이 났어요. 저는 우선 캐스팅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현장에서 감독이 배우의 연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현장은 기술의 언어가 쓰이는 장이에요. 그러니까 촬영, 배우, 파트별 기술 스태프들이 모여서 각자의 역할들을 해내는 건데요. 거기에서 저의 역할이 있다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 그게 저한테는 되게 중요한 역할이거든요. 그러니까 배우는 안전하고 편하게 본인의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하고, 스태프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적당한 노동 강도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 물론 프로듀서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현장은 감독의 주도 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영화 작업을 하면 할수록 감독의 역할은 그런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고요. 저는 일단 기본적으로 디렉팅할 때 배우가 괜찮으면 괜찮은 편이거든요. 그리고 영화를 순서대로 못 찍어요. 이 영화의 크랭크인 첫 장면은 계나가 뉴질랜드에서 몇 년 만에 돌아와서 아침에 숙취로 깨는 장면이거든요. 고아성 배우님도 저도 아쉬워했죠. 왜냐하면 뉴질랜드 촬영을 먼저 하고 혹은 예전에 직장에서 추위와 피곤함의 경험들을 하고 나서 그 장면을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크랭크인에 그 장면을 찍으니까 감정적으로 되게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고아성 배우한테 계나가 뉴질랜드 삼 년 갔다 왔어요, 모든 경험을 다 하고 난 뒤예요, 말로 설명하면서 찍었단 말이죠. 그리고 배우들은 힘들어도 힘들다고 얘기를 대체적으로 잘 안 하세요. 감독은 그런 배우의 상태를 보는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말하지는 않지만 혹시 불편해하는지 오늘은 촬영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계속 살피는 게 저의 역할이거든요. 좋은 연기라고 해주셔서 되게 감사한데요. 이 영화는 배우들이 좀 힘들어하긴 하셨어요. 기존에 작업하는 방식들하고 제가 달랐던 것 같긴 해요. 고아성 배우님은 되게 좋은 프로덕션을 경험한 배우거든요. 봉준호 감독님과 두 편의 작업 경험이 있고, 또 산업에서는 흥행 배우이기도 하거든요. 안판석 감독님과 드라마도 촬영했기 때문에 프로덕션 경험이 많아요. 그래서 저하고 작업했을 때 새로운 경험들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콘티 없이 촬영하는 감독이거든요. 아무래도 콘티가 없다 보니까 어느 장면을 어디에서 찍는지 배우들이 모를 때가 많아요.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생기면 이런저런 시도들을 많이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아마 배우들은 또 조금 다르다고 느끼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형석 : 이제 마무리해야 될 시간인데요. 여기가 시네마떼끄 공간이잖아요. 장건재 감독과 함께 이 공간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게 장건재 감독을 처음 만났던 게 시네마떼끄 공간이었어요. 제가 90년대에 갓 제대하고 뭘 할지 모르다가 우연히 영화에 관심을 가져서 문화학교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감독님이 고3이었나요? 와서 맨날 영화 보고 그래서 그때 문화학교서울에 계시던 형들이 되게 걱정했습니다. 고3인데 공부는 안 하고 왜 여기를 자꾸 오지 그랬거든요. 근데 지금은 장건재 감독이 반대로 형들을 걱정하고 있어요. (웃음) 저도 지금까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시네마떼끄 공간에서 장건재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뜻깊은 것 같아요. 늦게까지 많은 관객분들이 함께해 주셨는데 이런 공간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합니다. 전국에 몇 개 안 남아 있어요. 정말 소중한 공간입니다. 주변분들께 영화 보러 신영극장에 같이 가자고 말씀 많이 해주시고, 여기서 정말 좋은 추억과 기억들 만드시고, 문화적인 경험들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마지막으로 감독님께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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