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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 | 박석영 감독, 정은경·장선·김태희 배우 초청

CINE TALK 씨네 토크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5. 2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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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

/ 2020. 5. 13.

 

정지혜 영화평론가 진행

박석영 감독, 정은경 배우, 장선 배우, 김태희 배우 초청

 

정지혜 : 쉽지 않은 시절에 개봉을 하고 관객들을 만난다는 것이 그야말로 큰일인 것 같고, 또 그만큼 기쁜 일이기도 하고 기적 같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만들고 관객들을 만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셨던 거로 알고 있어요. 극장 개봉을 하기 전부터 전국의 독립영화관들, 작은 극장들을 찾아가면서 관객들을 직접 먼저 뵙자, 라는 취지로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강릉에서 만나 뵙는 자리가 색다르고 뜻깊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 감독님, 이 작업을 하면서 배급, 상영 이런 것들을 어떻게 고민하시게 되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요즘 Save Our Cinema(세이브 아워 시네마) 독립영화극장을 살려보자, 지지해 보자, 라는 취지도 있어서요. 그 말씀부터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석영 : 극장은 영화를 트는 곳이잖아요. 영화를 마주하는 곳인데, 제가 이해할 때는 영화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서,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이, 시간이, 그리고 애정이 가득 담겨 있는 저희들이 함께 나눈 깊은 시간이 스크린 안에서 여러분들을 마주하는 것인데. 실제로 제가 이게 4편째인데, 언제나 관객분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들어보지 못했다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게 되면 영화의 궁금한 것들을 조금 나누다가 인사드리고, 끝나고. 저희도 일처럼 하게 되고. 보신 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것들을 기억을 해서 좀 깊은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근데 그건 누구와 할 수 있을까? 그건 독립예술영화관들과 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독립예술영화관이 아닌 곳들에서는 아마 30~40분 하면서 정리하고 나가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예술을 혹은 문화를 함께 나누는 것이라기보다는 수직적인 느낌이 저는 강한 것 같아요. 만든 사람들도 여러분과 많이 다르지 않은 그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들인데, 저희가 뭐 가르칠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영화를 보고, 같이 이야기를 오며 가며 나누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 영화 같은 경우에 그렇게 한번 대면을 해보자. 그래서 신영극장도 저번에 한 번 찾아와서 했었고, 그리고 박광수 프로그래머님이랑 같이 어떤 방식으로 이걸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나누고. 그래서 여기를 오는데 마음이 되게 이상했어요. 저번에 강릉의 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와 함께 했었는데, 그날이 어떻게 보면 제 입장에선 대표적인 날이었어요. 인디하우스에서 영화와 상영에 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누면서 두세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지혜 : 어떠세요? 배우분들은 강릉 신영극장 오늘 처음 오신 분도 계실까요?

 

정은경 : 아뇨. 저번에도 왔었고요. 제주도나 창원이나 진주나 이렇게 많은 곳을 다녀보기는 했는데요. 특히 저번에 왔었을 때 강릉에 오면서 바다도 보고 그러기는 했는데 참 기억에 많이 남고 이번이 두 번째지만 주저 없이 왔었던 이유는 그때 상영하고 나서도 관객과의 대화를 했을 때 관객층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요. 문인분들이 정말 많이 계시더라고요. 게다가 또 젊은 분들, 나이 있으신 분들이 저희 작품을 본 소감을 말씀해 주셨을 때 저희도 깨닫지 못했던 진짜 문학적인 얘기들을 너무 많이 해주시고 또 분석도 잘하셔서 저희가 그때 깜짝 놀라서 돌아가기도 했었고. 이후에 또 인디하우스에 갔었던 게 잊히지 않는 게 감독님들도 되게 많으시고,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도 있고, 사진 작업을 하시는지 사진도 있고. 드럼도 있고 악기들도 있었어요.

 

정지혜 : 뭐가 많은 곳이네요. (일동 웃음)

 

정은경 : , 그래서 이렇게 활발하게 지하에서. 공간도 되게 넓었거든요? 그게 너무너무 보기가 좋았고, 세대가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손수 떡이라던가 순대, 떡볶이 (웃음) 따로 다 차려주셔서 좋았고 어쨌든 예술을 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고, 기운이 되게 젊어서 제가 잊히지 않아서 강릉을 언제든지 오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동 웃음)

 

정지혜 : 촬영지도 태백이라는 공간이 강릉과 가깝잖아요. 그 공간에서 꽤 오랫동안 머무셨을 거 같은데요. 그때의 인상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이었을 거 같고 감독님은 일찍이 거기에 먼저 내려와 계셨을 거 같은데, 이 태백이라는 공간에서 처음 갔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장선 : 저는 이 촬영 때문에 태백에 처음 가게 됐는데요. 태백이 고개를 돌리면 다 산이 있더라고요. 산과 하늘,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근데 그게 거기에 오래 사신 분들한테는 답답함을 줄 때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너무 좋았어요. 고개를 돌리면 저를 안아주는 그런 느낌이 들고 또 거기 시민분들도 만나면 어디서 오셨냐, 고향이 어디냐 이런 이야기를 하시면서 좀 거리낌 없이 말을 걸어주신 게 있었는데, 저희가 촬영을 하는 동안도 햇빛 모텔 사장님들 하고도 매우 가깝게 지내고 감자탕 뭐 감자전 사장님들도 그렇고. 저희가 눈이 와야 하는데, 고민하고 있을 때 눈이 오니까 사장님들도 같이 기뻐해 주셔서. 태백이 사실 다리 위의 장면이나 마지막에 언덕에서 만났을 때의 장면 찍을 때는 정말 제가 살아오는 동안 가장 추웠던 경험이었는데, 날씨는 추웠지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때 태백에 계신 분들이 다 너무 좋으신 분들이어서 태백 하면 또 한번 가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정지혜 : 김태희 배우님은 연기도 하시고, 사실 이 영화에 지분이 많으실 거 같아요. (일동 웃음) 제작부에도 이름을 올리시고, 본인의 집도 촬영 공간으로 내주시기도 했고 감독님과 전에 작업하셨던 적이 있으셔서 태백에서 머무시면서 여러모로 감독님에게 힘이 많이 되셨을 거 같아요.

 

김태희 : 태백에서 있으면서 여러모로 힘들지는 않았고요. 일단은 항상 새로운 공간이, 그 연기한다는 즐거움 중 하나가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기, 영화라는 이름 아래 노력해서 있어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되게 즐거운 일이죠. 제가 했었던 건, 저희는 배우가 많이 나오지 않잖아요. 그래서 장선 배우랑 은경 선배님 그리고 김준배 선배님 이렇게 같이 있으면서, 이마트도 가고 그런 시간들을 촬영이 끝나고 좀 보냈어요. 왜냐면은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즐겁죠. 새로운 공간에서 그리고 거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이잖아요. 그런 상상이 계속 좀 들더라고요.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있구나.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들일 거고 그런 생각들이 계속 있는데 사실은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되게 특별한 것 같아요. 왜냐면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잖아요. 내가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하늘과 되게 가까이 있다는. 그런 상상들을 그냥 혼자 조용히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거 하나하나가 그냥 좋았던 것 같아요. (웃음)

 

정지혜 : 감독님은 태백으로 가게 된 이유가 있으셨던 거로 알고 있어요. 이 영화를 준비하시기 전부터 어떤 다른 작품들을 좀 염두에 두고 있던 것들이 있었던 거로 저는 알고 있고, 그리고 그러면서 다른 작품을 위해서 태백에서 머무시다가, 오히려 이 <바람의 언덕>과 연이 닿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은데요.

 

박석영 : . 태백을 가기 전에 제가 원래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어요. 영월에 있었고, 그 영화 시나리오들을 좀 준비하고 그러다가 답답하기도 했고. 그래서 태백에 한번 가보자! 이런 마음이 있었고, 태백에 가서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 건데, 태백을 간 이유 중 하나는 그곳이 이제 저한테 먼 곳이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상대적으로 태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그래서 이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 볼 수도 있겠다 같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가보니까 정말로 저녁만 되면 영화처럼 사람이 아무도 없고, 군데군데 불빛이 있는 것 같은 흡사 갱도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거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래서 골목 하나하나가 다 동굴 같고 불빛이 하나만 딱 있어도 저기에 사람들이 서 있을 거 같고 그런 이상한 공간이라고 되게 많이 느꼈고, 근데 그 안에 김태희 배우님이 말씀하셨지만, 저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니까 마음속에 있는 속 시끄러운 생각들이 다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바람이 또 있고. 그래서 이제 그 안에서 이야기를 상상해서 하기 시작했었던 것 같아요.

 

정지혜 : 근데 감독님들마다 영화를 만드는 방식이라는 게 좀 다르시잖아요. 제가 아는 감독님 영화에서는 하나의 어떤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게 아마도 그 정은경 배우님이 전단을 붙이고 있는? 기도하고 있는 이미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서 그 이미지가 중요했던 이 영화의 하나의 장면을 뽑아 보자고 한다면 거기가 하나의 출발이 될 것 같은데요.

 

박석영 : , 맞아요. 그걸 어떻게. (웃음) 이제 밤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저기 어딘가에 여기서 정은경 배우님-영분이 전단을 붙이고 기도하는 것처럼 손을 모으고 그다음에 환하게 웃는 그런 얼굴 같은 장면을 흡사 본 것만 같았어요. 그러니까 아무도 없었지만. 저기에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서 전단을 붙이고, 근데 그 얼굴이 굉장히 환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 붙이는 것일까? 근데 왜 피곤할 텐데 웃고 있을까, 그렇다면 몰래 붙이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서? 그 누군가가 누구일 수 있을까. 전단을 붙이니까 그 일과 관련된 일이겠지? 그러면 제가 언제나 장선 배우님과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장선 배우님이 필라테스 강사를 했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러면 아, 저건 필라테스 전단이구나. 그러면 도대체 왜? 딸이구나. 근데 왜 몰래 붙이는 거지? 마주할 수가 없구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정지혜 :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는 방식이 그러하다는 걸 조금 알겠네요.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에서는 배우분들이 좀 내주는 것들이 매우 많을 것 같아요. 본인이 가지고 있거나, 본인 안의 스토리나 경험이나 뭐 집이든 (웃음) 육체적인 노동이든 그것이 무엇이 됐든 굉장히 많은 부분을 기대서 함께 가신다는 인상을 좀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배우로서는 즐거운 일이기도 하겠지만, 또 고된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은경 배우님 어떠셨나요? 전작도 같이 하셨잖아요. 감독님과 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 영화를 같이 해 나가는 방식이 힘들진 않으셨나요?

 

정은경 : 주인공이니까 날아갈 듯이 기뻤고요. (일동 웃음) 저는 이제 영화를 그동안 찍으면 나왔는지도 모르는 그런 작은 역할들을 했고, 그리고 또 그걸 하면서도 굉장히 많이 떨리고 긴장했어요. 막상 현장에 가면 대배우, 대스타들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서 주눅도 들고 또 카메라가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위해서 있는데 내가 여기서 빨리 실수하지 않고 하고 들어와야지, 라는 그런 생각 때문에, 대사를 외우고 가도 대사를 까먹어요. (웃음) 그리고 어떤 동선에 대한 연습이 없잖아요. 그니까 거기에서 여기에서 이렇게 해주세요, 라고 얘기를 들으면 대사를 다 잊어버리고 그것만을 지켜야 한다는 그런. 내가 거기에서 누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래서 그것만 열심히 하다 보니까 대사를 막 잊게 되고 긴장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사실 너무 고통스러워요. 근데 감독님과 작품을 할 때는, 전작 <재꽃>에서도 그렇지만 감독님은 굉장히 자유롭게 해주세요. 큰 것만 말씀하시지 여기서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어떤 기능적으로 일을 하시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열리고, 내가 무슨 실수를 해도 감독님은 나한테 잘못했다고 이야기하시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니까 큰 선을 지키면서 거기서 제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해도 부끄럽지가 않은 사람이라는 거죠. 그래서 무엇을 보여줘도 나보고 못했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 그리고 책망하지 않을 사람. 또 하나 감독님은 마음에 안 드시면 끝까지 하세요. 끝까지 하시니까 이틀이든 삼일이든 마음에 들 때까지 하신다는 걸 알고 있어서, 감독님이 마음에 안 드시면 저거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겠지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래서 사람을 아주 열리게 해주세요. 그래서 편안한 가운데 저도 생각지 못했던 그런 것들도 나오고, 연기도 나오고. 저는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참 많은 배우들이 감독님이 그렇다는 걸 알면 줄 서서 기다리고. (일동 웃음)

 

박석영 : 제발 그러지 마세요. (웃음)

 

정은경 : 감독님을 칭찬하는 게 아니에요! 칭찬하는 게 아니라 우선 배우를 열리게 해주잖아요. 기능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어떤 믿음과 함께 밑바닥에서부터 본심을 보려고 하시는 분이시니까 그렇더라고요. 짧게 들어갔다 나오면 뭔가 해주고 와야 할 것 같은 어떤 기능성을 느끼거든요.

 

정지혜 : 그럼에도 계속 진행되면 고통스럽지는 않으셨어요? 그것과 별개로. (웃음)

 

정은경 : 아니요, 고통스럽지 않았어요. 하루하루가 잊힐까 아까웠고 꽃잎이 떨어져 가는 것 같았어요. (일동 웃음)

 

정지혜 : 장선 배우님은 어떠셨습니까? 사실 저는 장선 배우님을 <소통과 거짓말>이라는 영화로 처음 뵀었는데, 아마 그 영화를 보신다면 오늘 본 영화 속의 얼굴과 너무 다른 얼굴을 보실 거라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같은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인데요. 아마 그 영화를 통해서 감독님도 장선 배우님과 언젠가 한 번 만나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신 거로 알고 있어요. 역할을 제안을 받으셨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장선 :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제가 2015년에 <소통과 거짓말>이라는 작품으로 부산에 갔을 때 감독님께서 <스틸 플라워>라는 작품으로 같은 시기에 영화제에서 만나게 됐고 그때 인사를 나누고 그 이후에 작품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고 정말 그 이후에 제 작품을 영화든 공연이든 와서 봐주셨어요. 같이 작품을 하자 이야기를 하시고 바로 작품을 했던 건 아니지만, 그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제 작품마다 와서 응원을 해주셨고, 진짜 저 감독님이 제안을 해주시면 정말 꼭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이미 하고 있을 때. 그때 <바람의 언덕>을 제안해 주셨고요. 아까 이야기하신 것처럼 심지어 필라테스를 인물에 이렇게. (웃음)

 

정지혜 : 전문 강사님이시죠?

 

장선 : .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사진을 개인 SNS에 올린 걸 보신 적이 있으셔서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신 게 저는 배우로서 당연히 매우 감동적이었고, 그리고 사실 <소통과 거짓말>과 그다음 <해피뻐스데이>가 어떻게 보면 참 강한 인상의 역할이에요. 예를 들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될 분 앞에서 남자친구를 때린다든지 한희와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역할이었는데도 감독님께서 믿고 환희라는 너무 소중한 역할을 제안해 주신 게 되게 감사했고요. 그리고 작품을 하면서는 저는 영화 경험이 많지가 않아서 매 촬영장마다 배우는 느낌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이 작품을 하면서도 처음이어서 어려운 것들도 있었고, 근데 그것들을 제가 뭔가 부딪히고 어려울 때 감독님께 말씀을 드리면 그걸 같이 고민해 주시고 현장에서 장면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고요. 제가 어떤 질문이나 어려운 것들을 말씀드렸을 때 촬영지를 한참 걸으시다가 시나리오와 다르게 장면을 바꿔주시기도 하시고. (웃음) 선배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더 믿고 할 수 있도록? 배려를 많이 해주시는 촬영장이었던 것 같아요.

 

정지혜 : 캐릭터나 스토리에 대해서는 아마 관객분들이 더 질문을 주실 것 같고요. 저는 한 가지만 먼저 궁금했습니다. 이번에 유독 감독님이 인물들을 나눠서 찍었더라고요. 예를 들어 두 명이 대화를 하는데도 한명 한명의 얼굴을 한 번씩 보여주는? 일종의 우리가 전경을 볼 수 없는 이 두 사람의 어떤, 보통 크게 보면 이들이 지금 무슨 감정인지 서로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자세나, 포즈, 상황들을 조금 훑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있는 장면들을 다 나눠 두셨는데요 나눠서 찍는 것보다는 왜 함께 있는 샷을 찍지 않으셨을까에 대해서 궁금했습니다. 다분히 감독님이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쪼개두고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들을 보게끔 해주셨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주요한 부분이었을 것 같아서 그 부분을 여쭤보고 관객분들과 질문을 이어가겠습니다.

 

박석영 : 잘 모르겠어요. 어려운 질문이세요. 진짜로 어떻게... (웃음) 왜냐면 저는 그전에 그런 적이 없어서 지난 3편의 <스틸 플라워>, <재꽃> 이렇게 나눠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나누는 게 되게 불편했어요. 그럼에도 처음에 생각했던 건 이번에는 인간의 얼굴을 찍겠다. 이런 마음이 저에게 있었고,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깊이 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있었고. 그거는 그 배우들이 말을 끄집어내서 던질 때의 순간만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시간? 어떤 사람의 언어 사이에 있는 긴장과 세월? 그것을 포함한 어떤 촬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은 제가 모호함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요. 왜냐면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은 보통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와 얼굴이 다르고 감정이 다르고 그것을 명료하게 보여내기 위해서 가장 모호한 공간을 찍기 위해서는 클로즈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클로즈업은 이 인간을 믿을 수 없다는 전제로 찍혀진 것이에요. 그래서 나누어져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곡하게 서로가 이어질 수 있다면 그건 운명일 수도 있으니까. 저는 끝까지 나누고 배우분들은 끝까지 마음을 이은 거죠. 그런 저한테는 모험 같은 일이었고 그래서 이 영화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시 만나고 싸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것들보다 저 사람이 얼굴이 하나씩 지나가는 것 같아요. 처음 혼자 불빛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환희,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아줌마한테 잘해주려고 하는 어떤 모습, 다가가서 데리고 들어가려는 모습 그리고 나서 저 사람은 누구지? 당황하고 포스터를 떼러 갔는데 이게 뭐지? 갔다가 보는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이 끊임없이, 그건 영분도 마찬가지고 얼굴, 얼굴, 얼굴... 이 영화를 생각해보시면 만남의 순간은 한 3번밖에 되지 않아요. 다 그저 얼굴, 얼굴, 얼굴. 근데 그 얼굴은 어쩌면 우리가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뒷모습의 얼굴들이란 말이죠. 그것은 제가 이해할 때 저희 어머니와 관련이 있고. 저희 어머니가 저희 집 근처에 사시는데 가끔 혼자 걸어가시고 다니시는 걸 저는 뒤에서 목격할 때가 있을 거 아니에요. 어머니는 저 사람들 사이를 걸어서 우리 집 근처에 와서 사과를 하나 사갖고 방문을 두드리고. 그리고 거기까지 돌아오는 얼굴, 얼굴, 얼굴들을 저는 본 적이 없는 거예요. 문을 열고 사과를 갖다 놓고 먹으라는 얼굴만 본 거죠. 이 인물들은 다리 위의 장면만이 이들의 얼굴이 아니라 그전의 얼굴들을 다 포함한 어떤 사람, 그래서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에게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맨 마지막 장면도 둘이 만났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의 것과 이 사람의 것이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세월은 틀림없이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은 제가 생각할 때 관객들의 바람일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을 행복하게 만났다고 믿을 수도 있고 저들이 앞으로 잘 지내지는 못 할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것들은 이것이 매우 불투명한 얼굴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에요.

 

정지혜 :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웃음) 저는 이 영화의 제목이 바람이 언덕이라고 했을 때, 실제로 가보신 분들도 있으실 거 같은데 태백 매봉산에 있는 곳이라고 감독님이 알려주신 적이 있어요. 늘 바람의 언덕이 그냥 부는 바람만 생각했는데 오늘은 문득 정말 소망하는,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 같은 것 같기도 하다. 저도 오늘은 좀 다른 바람을 생각하면서 이 극장으로 왔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웃음) 관객분들 질문을 좀 받겠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시다면 배우분들이나 감독님께도 질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관객1 : 전에 KBS1 라디오에서 인터뷰한 방송을 들었거든요. 무슨 감독님이 저렇게 진지하게 인간에 대해 성찰이랄까, 어떤 독립영화를 만들면서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그거를 한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가 많이 느꼈어요. 제가 궁금한 게 뭐냐면, 제가 시력이 좀 안 좋아서 미용실에 가서 뭔가 편지를 받아 왔는데 그 내용이 영화의 어떤 발단 단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내용일 것 같은데 제가 그 내용을 다 읽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를 봤어요. 상상력으로 이끌어 갔는데, 그 편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서 알고 싶어요.

 

박석영 : 편지의 내용은 언니 미안해. 그리고 내가 일이 있어서 도시를 떠나야 하는 일이 생겼어. 우리 언제 같이 노래하면서 놀 때 참 좋았는데, 언제 다시 만나면은 그렇게 같이 노래하고 놉시다. 그리고 언니가 놀랄까 봐 얘기 안 했는데, 한희가 찾아왔었어. 한희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해.” 그리고 그 안에 한희가 남겨둔 명함이 같이 들어있는 거였던 거죠. 미장원에서 일하던 영분의 옛날 동생 친구가 자기가 태백을 떠나면서 남겨둔 편지 내용입니다.

 

관객1 : , 또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것은 보통 우리가 태백이나 고한이나 여기 나오는 지명인 황지나 이런 데는 고정관념이 다 있어요. 탄광 도시 이런 거. 근데 이 영화 속에서는 그런 게 없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태백이라는 곳은 저희 이모님이 탄광에 근무하시고 사셨던 곳이었고, 64년생이라서 올해 56살이 됐는데, 70년대의 초등학교 방학 때에는 기차를 타고 황지를 꼭 갔었어요. 이모가 조그마한 구멍가게 같은 슈퍼마켓을 하셨는데, 퇴근 무렵에 광부들이 나오셔서 막걸리 한잔을 하고 집으로 가셨거든요. 근데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모를 도와서 설거지를 하다가 나무 의자 밑에 새카만 탄가루가 묻어 있는 무슨 도시락 보따리가 보이더라고요. 호기심에 그걸 열어보니까 양은도시락 안에 갱도 안에서 먹었던 김치에 물 말아 먹은 흔적이 그게 정말 잊히지가 않아요. 그 장면들이 그리고 다리 위에 서 있었던 데는 아래를 내려다보면 탄광에서 나오는 노랗고 시퍼런 것들이 막 흐르고 있었거든요. 그런 태백이라고 하는 곳은 제가 갈 때마다 느끼기엔 완전 골다공증에 걸려있다. 70~80년대에 산업화 과정에서 다 진흙을 다 뺐었잖아요. 부서질 것 같은? 그런 황량한 풍경인데 이 영화 속에서 보면 이 주인공 엄마나 딸도 얼마나 삶이 심란하고 힘이 들어요. 굉장히 어려운데, 낮보다 밤에 촬영한 게 많은데 의도적으로 심란한 삶을 어둠 속에다 담으려고 한 것인지 그것도 궁금했습니다. 어쨌든 태백 하면 느낄 수 있는 고정관념이 아닌 엄마와 딸이 만나서 긍정적으로 잘 살 것 같아요.

 

박석영 : , 감사합니다. 아이참 신기한 일이네요. 저도 진짜 똑같은 고민을 했었어서. 제 고정관념이라는 것도 어차피 그곳이 탄광 동네였다는 것에 멈춰있었기 때문에, 가서 보고 나서 사실은 제 기대와는 조금 다르고 탄광보다는 실은 탄광의 기억만 남아있는 곳이고. 실제로 탄광에서 일하셨던 분들은 많은 분들이 그 동네를 떠나시거나 몸이 안 좋아지시거나 혹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시거나. 왜냐하면, 그곳은 70~80년대까지도 전국에 몸만 건강하면 돈 벌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제가 알기에는 그 동네가 돈도 많았고, 그리고 그만큼 험하고. 돈이 많으니까 얼마나 험했겠어요. 그랬다고 저는 알고 있고 이상할 정도로 골다공증에 걸린 것 같은? 그냥 텅 비어 있는 거 같은 그런 마음을 제가 이번에 가서 되게 많이 느꼈죠. 근데 물론 만나 뵈신 분들은 다들 너무 좋았어요. 너무 좋은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한테는 왠지 여기서 김준배 배우님이 유배 생활,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것처럼 또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동네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들도 들었고, 간다면 왠지 마지막 갈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상하게 기억이 굉장히 많이 쌓여있는 공간일 거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탄광에 대한 이야기를 좀 넣어볼까? 고민하기도 했었어요. 근데 그거는 이 영화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적인 깊이로 다루어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강릉에서 작업하시는 김성희 작가님의 너는 검정이라는 만화가 있어요. 그 책을 제가 이거 때문에 읽어보고 그랬는데, 이 깊이는 제가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세월의 깊이는. 너는 검정이라는 그 그래픽 노블이 획득한 위대한 예술과 인생이 담긴 깊이는 흉내 낼 수 없다고 저는 생각했고 그래서 탄광 이야기를 저는 의도적으로 다 뺐어요. 제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지혜 : 관객분께서 아까 그 편지 이야기를 해주셔서 저는 조금 궁금하네요. 그래도 그 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셨을 것 같기는 한데. 감독님께서 그런 것들을 안배하잖아요. 만약에 영화에서 편지가 나온다면 어느 정도의 속도로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을 감독님들이 많이 계산하시는데 약간 의도적으로 조금 흐릿하게 보이게 하신 거 같기도 하고 저도 좀 궁금했던 지점이었어요. 약간의 그런 의도도 있으셨나요?

 

박석영 : 아니요. 원래 녹음을 한번 해봤었는데, 언어적으로 전달이 되니까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정말 궁금하면 나중에 찾아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좀 있었고, 그리고 딸을 잃었다 혹은 딸이 보고 싶어 한다 이런 게 사실 대단한 정보라고 생각하지 않은 면도 있어요. 근데 하나 또 읽어보면은 그게 또 마음에 걸리는 것도 많아서 너무 길게 쓰지 않으려고 했고, 최대한 잘 볼 수 있게 하려고 하긴 했는데. (웃음)

 

관객1 : 시력 좋으신 분들은 다 보셨을 거예요. (웃음)

 

관객2 : 제가 궁금한 건 먹는 식사하는 장면이 좀 궁금했거든요, 왜냐면 자취생만 꼭 그런 건 아닌데, 힘들면 고기 먹고 싶은 날이 사실 있잖아요. 혼자 먹는 신이 되게 슬프더라고요. 근데 어떻게 보면 밥 먹을 정도의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는데 굳이 같이 먹자고 한 거잖아요. 그때 식사를 하시면서 같이 앉아 있지만 두 분이 사실 동상이몽인 거잖아요. 뭔가 배우분들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공감될 만한 혼자 먹다가 둘이 먹는 즐거움. (일동 웃음) 그 김태희 배우님이 시금치 드실 때 그게 인상 깊었거든요. 되게 떠보고 싶은데 시금치가 계속. (웃음) 그래서 그걸 먹는 움직임? 장선 배우님도 고기를 드실 때 못 넘기시고 계속 씹으시더라고요. 그런 움직임이나 기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장선 : 일단 고기라는 게 참 혼자 먹기가 어려운 음식 중에 하나잖아요. 저도 혼자 찌개나 국밥을 먹어본 적은 있는데 아직 고기는 도전을 못 했어요. 근데 그만큼 한희가 혼자 있었던 시간이 길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었고, 그 외로움이 보일 수 있었던 메뉴였던 것 같아요. 삼겹살. (웃음) 근데 영분 아주머니가 왜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을 써주는 게 느껴지는데 근데 그걸 확 표현하시는 것도 아니고, 되게 누르면서 호떡 쓱 주고 가시고 그런 것들이 한희에게 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면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 고기를 먹으러 가기 전에 과호흡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에 대해서 집주인이 왜 이렇게 새벽에 이상한 소리가 나냐고 항의 전화를 받는 장면이었어요. 제가 계속 죄송하다고 하는데 평소보다 더 외로운 날 갑자기 나타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냥 생긴 어떤 용기? 근데 막상 가니까 너무 어색한 거예요. (웃음) 회원님과 센터 외에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한희는 그런 걸 또 잘하는 친구도 아니기 때문에 그 고기를 먹는 게 참 좋은데 또 너무 어색하고, 그런 마음에 고기가 더 안 넘겨졌던 것도 있었던 것 같고. 또 고아 얘기를 물어보시게 되잖아요. 평생 한희가 몇 번씩 그런 대답을 해봤을 텐데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다들 없었던 얘기였던 것처럼 어물쩡 지나가는 어떤 보통의 리액션이었다면, 갑자기 이렇게 눈물이 차서 그걸 누르려고 하시는 영분 회원님을 보면서 놀랍기도 한데 당황스러운데 고맙고, 근데 그래서 서러워지는. 사실 그 고기 먹는 장면을 촬영 전에 맞춰보지를 않아서 시나리오상으로는 한희의 마음이 그렇게까지 흔들릴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마냥 좋고 그냥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고아 얘기를 하시고 눈물이 핑 도시는 그 모습에 한희도 사실은 마음이 크게 움직이고 진짜 저 사람이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아요.

 

정지혜 : 식사 장면에 대해서 영분의 입장에서는 어떤 심정으로 그 장면에 임하셨나요?

 

정은경 : 어떤 분이 얼마 전에 GV를 할 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부모님이 굉장히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라고 한희한테 슬쩍 떠보는 듯한 물음이 있었는데, 그걸 듣는 순간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는지 너무 밉고 못됐다고 생각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게 아니라 한희가 이제 엄마가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탈선을 하지 않고, 제대로 키우지 못했는데 한희는 너무 해맑고 이쁘고 착하고 예의 바르고. 또 힘든데도 힘든 내색도 안 하고 열심히 살고 있어서 저는 한희가 의사 선생님이나 대학교 교수님 (일동 웃음) 그런 집안으로 입양이 돼서 잘 큰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고아로 자랐다고 얘기를 듣는 순간 죄책감을 덜 수 있었는데 그렇게 얘기하는 순간 고아로 자랐었을 그 시간들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참을 수가 없을 만큼 너무 힘들었던, 처음 듣는 단어? 아픈 단어? 아무튼 그 당시에 그렇게 이야기를 했고, 저는 또 한희한테 눈물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을 들켰어. 그럼? 봤어? (장선 배우에게) (일동 웃음) 저 눈물을 숨기려고 계속 참았거든요. 그랬더니 콧물이 나오더라고요.(웃음)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었습니다. , 근데 한희가 눈물을 봤구나!

 

김태희 : , 시금치. 아까도 식사하면서 선배님이 저한테 너네는 무슨 밥을 그렇게 빨리 먹냐?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 것도 좀 있죠. (웃음) 음식 중에서 가장 오래 씹을 수 있고, 뭔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그냥, 제가 먹는 거를 조금 빨리 먹는 편인가 봐요. 목도 좀 두껍고 해서. (일동 웃음) 대충 이렇게 들어오면 그냥 넘겨요. 근데 시금치 같은 나물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사실 제가 풀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때 그래서 선택한 것도 있고 좀 다양한 것들을 위해서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이 제안해 주신 것도 있고 제가 그때 시금치를 선택했었던 건 아무래도 가장 오래 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안 그랬으면 다 넘길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름답고 깊은 대답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답이어서. (일동 웃음) 죄송합니다.

 

정지혜 : 아닙니다. 시금치가 연기하실 때 오래 씹으면서 호흡을 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한 반찬이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감독님께 조금 여쭤보고 싶었던 것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꼭 보세요. 감독님의 3편의 전작이 있는데요. 그 영화 안에서도 아까도 끝까지 이 인물들을 떨어뜨려 놓겠다, 그럼에도 이들이 만난다면 운명이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는데, 사실 전작들에서도 인물들이 섬처럼 떨어져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저는 보면서 이 한희의 텐트도 마치 <스틸 플라워>에서 하담이 있었던 공간같이도 보였었고, 심지어 영분의 모텔 방도 그런 느낌이 들었고, 정말 당장 지금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처럼 가방 하나 캐리어 하나 끌고 다니는 어떤 여자들의 모습들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까지 인물들을 섬처럼 외롭게 바라보고 계실까? 이게 좀 궁금했고, 그럼에도 이번에는 뭔가 대면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좀 드셨던 것 같기는 해요. 근데 그것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희망으로 읽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감독님에게는 여전히 그 만남이 물음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꼭 낙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느낌도 많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보는 어떤 인물들의 세계, 인물의 감정이 왜 이렇게 외로울까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박석영 : 그런지 잘 몰랐어요. 그냥 외로움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니고요. 제가 그렇게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첫 영화부터 지금까지 계속 돌이켜 보면서, 어제 GV를 할 때 그때 그 마음이 들었는데, 저는 그동안 5~6년에 걸쳐서 4편의 영화에서 다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찍은 셈이었던 거예요. 그리고 실은 계속 떠돌아야 할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계속 그렇게 영화를 찍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 둘이 이렇게 산꼭대기에서 마주한 것조차도 심지어는 둘이 같이 따뜻하게 있는 장면이라기보다 각자의 시간을 마주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이렇게까지 계속 제가 인간의 관계를 따뜻하게 바라보기를 힘들어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런 이유는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아이들은 어른들이 버린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얘기는 더해서 저도 저의 인생 안에서 어렸을 때의 저를 버리기도 하고, 어렸을 때 어떤 시점들에 누군가를 버리기도 하고, 그것을 화해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버렸던 수많은 관계들을. 그래서 어쩌면 영분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너 때문에 평생 나쁜 사람으로 살아야 돼!” 같은 건 제가 지나온 세월의 관계에서 느끼는 어떤 마음일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저는 시간이 좀 지났잖아요. 마흔여덟인데, 지난 일이라 하면 그때의 나와 헤어졌던 그 많은 친구들은 지금의 저보다 훨씬 어리잖아요. 지금 나이가 똑같더라도 어렸을 때의 성훈이, 어렸을 때의 민지, 내가 어렸을 때 상처 줬던 그 이름과 얼굴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근데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조금 이해하게 된 건 이런 정도의 바람이 있지 않았을까? 걔들이 내가 너희들한테 했던 수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때 어렸으니까 괜찮고, 그리고 미워하지 않는다고 거꾸로 그 말을 제가 듣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해봐요.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대면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제가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는 어떤 건, 서로가 두렵다고 이야기하는 것 너머에 서로 숨을 내쉬는 것 같은 부분인 것 같아요. 둘 다 어딘가로부터 혹은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나도 풀려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저는 이다음 영화를 조금 더 용기 있게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지혜 : 제가 작년에 뵀을 때는 내년에 꼭 찍겠다고 하셨으니까 벌써 올해가 왔네요? 아마도 뭔가 작업이 있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저희 이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요. 인사 부탁드립니다.

 

정은경 : 너무 많은 말을 해서 고맙습니다.

 

장선 : 저번에 강릉 상영 왔을 때 연령대가 조금 있으셨던 어머님이 핸드폰에 하시고 싶은 말들을 적으셔서 일어나서 읽으셨는데 그게 되게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선배님처럼 저도 강릉 하면 그때의 그 관객분이 오래 기억에 남고, 오늘도 소감이나 사실 질문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보셨나 이런 얘기도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마음속에 담고 좋은 말씀들 그리고 혹은 안 좋았던 것들도 다 담고 계실 거라는 거 알고 있고. 너무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희 :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못다 하신 말씀들은 네이버에 평점과 함께 (웃음) 해주시면 저희가 일일이 찾아서 읽고 마음속에 저장해놓고 있겠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박석영 : 이렇게 너무 감사한 시간을 보내서 너무 좋습니다. 아마 이번이 강릉을 오는 것이 마지막일 것 같고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전국을 다니고 또 일반 개봉을 하면서 이제부터 저희는 2주만 열심히 다니면 이제 바람의 언덕을 떠나게 돼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고 또 이 공간, 신영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나눴던 시간을 우리밖에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언젠가 꼭 기억해 주시고. 저희 배우들 정은경 배우, 장선 배우, 김태희 배우, 오늘 못 오셨지만 김준배 배우님까지. 독립영화는 배우들이 잘돼야 해요. 배우들 기억해 주시고, 추천해 주시고, 앞으로 더 많은 아름다운 작품에서 만날 수 있게 꼭 응원과 지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지혜 영화평론가님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지혜 :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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