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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영화비평 2] 남성을 넘어서려 했던 악녀! 캐서린 - 한석현

SPECIAL 기획

by 강릉독립예술극장신영 2020. 2. 23.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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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2019년 11월과 12월 동안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진행한 "처음 쓰는 영화비평" 워크숍 수강생의 글을 모은 비평집에 실린 글입니다.


<레이디 맥베스>(윌리엄 올드로이드, 2016)

남성을 넘어서려 했던 악녀! 캐서린

/ 한석현

 

<레이디 맥베스>()과 주종(主從)’의 인물 간 상호 권력 관계를 그린 영화다. 특히나 캐서린(플로렌스 퓨)과 세바스찬(코스모 자비스)의 권력 관계는 복잡하고 흥미롭다. 캐서린이 마지막 장면에서 퀭한 얼굴과 넋을 놓은 듯한 눈빛으로 정면에 고정된 때는 묘하게도 세바스찬이 사라진 후다. 왜 세바스찬이 사라지면서 캐서린은 초췌해졌는가? 이를 밝히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시간순으로 두 인물과 주변인물간 권력 관계를 밝혀 나가려 한다.

 

우선 두 인물과 주변 인물 간 성과 주종관계에서의 위치를 알아보자. 두 인물 사이에서 캐서린은 여성이며 주인이고 세바스찬은 남성이며 노예이다. 그리고 남성이며 주인인 시아버지와 남편 앞에서 캐서린은 여성이면서 노예로서, 그리고 세바스찬은 노예로서 무력한 위치를 공유한다. 이 관계 안에서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고 주인은 노예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의 처음으로 가보자. 안나(나오미 아키에)는 시아버지의 눈이다. 캐서린에게 경어체를 쓰지만, 머리를 함부로 다듬고 살갗에 피멍이 들 정도로 문지른다. 시아버지 앞에서는 캐서린도 노예다. 캐서린과 안나는 여성이며 노예로서 동등한 것이다. 그러기에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 이때 세바스찬이 등장한다. 여성인 안나는 같은 노예이지만 남성인 세바스찬에게 능욕을 당한다. 반면 캐서린은 벽을 보라고 세바스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주인이다. 더불어 세바스찬은 남자로서 여자인 캐서린을 희롱한다. 여기서 캐서린과 세바스찬은 묘한 대등 관계가 된다. 주인으로서 캐서린이, 남성으로서 세바스찬이 서로가 서로에게 갑을의 위치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가? 캐서린은 세바스찬에게 욕정의 감정을 품게 된다.

 

이후 세바스찬과 몸을 섞던 캐서린은 성과 주종의 권력 관계에 도약을 시도한다. 이는 캐서린이 세바스찬을 통해 권력의 빈틈을 보았기 때문이다. 노예로서 세바스찬이 주인인 캐서린을 탐할 수 있고, 여성으로서 캐서린이 남성인 세바스찬을 넘볼 수 있다. 이 둘은 기존의 계약관계를 넘어서는 일탈적 관계이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계약관계가 무너진 이 틈에서 캐서린은 기존의 권력 관계가 변할 수 없는 공고한 성벽이 아니라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임을 알아챈다. 그리하여 캐서린은 남성과 동등한 여성, 주인을 넘어서는 노예를 꿈꾼다. 이는 시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극명해진다. 캐서린은 남성이자 주인인 시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계를 넘어선 캐서린은 시아버지와 동등하다. 시아버지는 늙고 정욕이 다한 남성일 뿐이며, 그의 권력을 위해 죽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아버지는 독버섯이 든 음식을 먹고 캐서린의 주인 위치에서 사라진다. 캐서린은 남편이 돌아왔을 때 한 번 더 도약을 시도한다. 이제는 늙고 나약한 남성이 아니라 젊고 건장한 남성을 넘어서려 한다. 캐서린은 자신의 불륜을 추궁하는 남편 앞에 당당히 세바스찬을 드러내고 성교를 흉내 낸다. 그것도 남성인 세바스찬을 올라선 지배자의 자세다. 그는 남성인 남편을 능욕하고 그를 지팡이로 내리쳐 죽인다. 드디어 그는 주인이자 남성인 둘을 제거하고 심적 자유를 얻는다.

 

반면 세바스찬은 노예로서 나약하다. 그는 주인이 죽자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주인을 죽인 캐서린의 두려움 없는 눈빛이 무섭다. 그는 캐서린과는 달리 주인을 꿀꺽 삼켜버릴 근원적 힘이 없다. 그는 노예이지만 동시에 남성이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여성으로서 권력의 틈을 보고 그 틈을 이용해 권력 관계를 전복하는 용단을 보이지만, 세바스찬은 캐서린과의 관계에서 주인과 대등해진 자신의 노예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캐서린을 자신이 꾄 여성으로만 보는 기존의 남성적 사고를 답습한다. 이 때문에 그는 주인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노예다. 주인의 옷을 입었어도 주인이 아니다. 이는 어린 흑인 주인이 등장하면서 더 두드러진다. 새로운 주인의 등장으로 캐서린을 만나지 못하게 된 세바스찬은 캐서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노예로서의 나약함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때문인지 주인 행세에 지친 세바스찬은 지배하는 남성이 되기 위해 안나와 가까워지려 한다.

 

이후 어린 흑인 주인을 죽인 캐서린을 보고 세바스찬은 그를 더욱 두려워한다. 그는 캐서린처럼 사회적 금기를 깨뜨리는 도약적 횡단을 하지 못하는 남성이다. 기존의 남성 권력에 안주하는 세바스찬은 캐서린의 도덕적 규율의 파괴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한 세바스찬은 그의 살인을 공개석상에서 폭로하고 만다. 이에 캐서린은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세바스찬의 남성을 버리고 그의 노예를 부른다. 주인으로서 캐서린과 남성으로서 세바스찬의 암묵적 계약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로써 노예가 주인을, 여성이 남성을 넘어서는 그의 권력 관계의 근원적 도약 틀이 무너지고 만다. 또한, 캐서린은 남성의 공증인에 의해 자신의 잘못을 뒤덮는다. 남성을 넘어서려 했던 그는 결국 남성의 법에 호소한다. 다시 남성의 지배하에 스스로 포섭되고 만 것이다. 남성과 대등했던 여성은 무너지고 주인에서 노예로의 전락이다. 세바스찬을 잃어버린 그는 흐트러진 머리로 정면에 고정되고 드레스 색은 바랠 대로 바래진다. 이전에 정면에 고정됐으되 단정한 머리와 푸르른 드레스로 꼿꼿했던 결기는 사라져 버린다. 캐서린은 스스로 노예가 되고 생의 시간이 멈추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생의 시간은 짧지 않으리라. 끔찍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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